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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강물이 언어로 속삭인다
게시물ID : lovestory_866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5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2/11 13:18:2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im-dp2y1u-k







1.jpg

윤성도상처는

 

 

 

끓는 물 주전자와 같다

물 한 주전자 끓이는데 드는 시간

맨 얼굴 드러낸 채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한 마리 짐승이다

그대가 아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치유되는 증거이다

하나님과 그대가 만나는

창문이다

한없이 단조로운

회색 시간에

스토브에 지핀

뜨거운 불이다







2.jpg

박형준강물이 언어로 속삭인다

 

 

 

새벽 다섯 시면

강물이 산길을 흘러내려온다

먼 길을 시골길도 아니고 도시의 새벽길을 밟아

닫힌 내 집 창문을 흔드는 강물 소리

전세를 얻고 이 집에서 이태를 넘게 살면서도

처음에는 강물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았다

언제부턴가 새벽 다섯 시만 되면

나는 강물 소리를 기다렸다

어떤 날은 책을 읽다가 밤을 하얗게 새워버리고

새벽 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곤 하였다

숲에 번지는 불을 몰고서 멀리서부터 흘러내려오며

산들바람처럼 새벽 숲을 흔든다

강물 소리는 산길을 내려와 동네로 접어든다

삐뚤빼뚤한 변두리 골목길을 올라오면서

엄마를 깨우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섞이고

숨을 헉헉대면서 높은 골목길의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의 고단한 어깨를 스친다

 

새벽 다섯 시면 댕댕댕 산 중턱의 절에서 흘러내려온다

비 온 뒤 거리의 보도블록에서

풀들이 솟아 나오듯

도시의 시멘트에 가두어놓은 저 시퍼런 범종 소리

새벽 창에 강물이 언어로 속삭인다







3.jpg

정한용도라지꽃

 

 

 

흰 꽃이 피었습니다

보라 꽃도 덩달아 피었습니다

할미가 가꾼 손바닥만한 뒤 터에

꽃들이 화들짝 화들짝 피었습니다

몸은 땅에 묻혀 거름이 되고

하얀 옷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무더기로 손 쓸립니다

수년 전 먼저 길 떠난 내자(內子)를 여름빛으로 만나

한참을 혼자 바라보던 할애비도

슬며시 보랏빛

물이 듭니다







4.jpg

김영승아름다운 폐인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 둡니다

착하디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 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 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5.jpg

박진형풀등

 

 

 

쉰일곱에 풀등이란 말 처음 알았다

모래등도 고래등도 곱등이도 아닌 풀등이라니

 

서해 앞바다 대이작도가 숨겨둔

일억 만 년 고독 견디며 들숨날숨이 만들어낸

신기루의 성소(聖所)

 

하루에 한 번 갈비뼈를 열고

젖은 모래등 햇살에 널어 말리는 혹등고래

 

타박타박 눈썹사막 걸어 나온

풀등인 당신에게 기대어

한 생이 다 저물어도 좋겠다고

나직나직 말하는 여린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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