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뱅장. 옆소대 새로 온 신병있잖습니까."
"신병?...아. 그 얼굴하얀 애?"
"ㅇㅇ. 애들이 그러는데, 갸 귀신본답니다."
"귀신씨나락까묵는 소리하네.
야. 우리 기본초소가 무덤들 한가운데 있어ㅋㅋㅋㅋㅋㅋ
내 병장인데 귀신 한번도 못봐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ㅋㅋㅋㅋㅋㅋㅋ
너네 소대 초소는 모르겄다. 본부아저씨가 그 앞 초소에서 귀신이 깨워줘서 순찰 안뚫렸다더라."
"엌ㅋㅋㅋㅋㅋ 할매귀신말하나??? 할매는 우리 편이라 상관없슴다ㅋ"
(그 소대 에어리어에 너무 푹 자고있으면 꿈에 나와 순찰이나 교대시간에 맞춰 깨워준다는 인자한 할매귀신이 있다함. 물론, 나는 본적 없음ㅋ)
실제로 우리 소대 기본초소는 철책 코너에 있었는데, 철책 안팍으로 무덤들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초소가 있었다.
진지공사때 아무리 떼가 부족해도 봉분 주위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고,
우리가 감히 봉분에 발 디딜때는 여름에 제초작업하는 김에 벌초할때랑 겨울에 제설작업하는 김에 봉분에 쌓인 눈 치울때 뿐이었다.
애초에, 무덤주위에 경시줄을 쳐놓아서 병사들이 밟고 다니지 않도록 부대차원에서 신경쓰고 있었다.
신병때 초소와 순찰로 주변에 무덤이 많아서 귀신나오는거아냐???라며 두근두근해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런 쪽으로는 겁이 없음. 사람이 더 무섭지-_-)
어느새 그 철없는 이등병은 졸면서 야간순찰로를 돌아댕기는 베테랑 경계병력으로 진화해있었다.
(나와라 근무근무몬!!! 환자발생으로 결원이 발생했으니, 너에게 초말중초후반야 맞교대를 명한다!!!!....ㅆㅂ...)
그러다 상병2호봉때부터 분대장했다고 병장은 한달 조기진급했고,
때마침 당직서던 분대장고참이 전역하게 되어, 적당한 병장짬이라며 당직을 서게 되었다.
당직은 설만했다.
중대간부들에게 나름 예쁨받던 신세이고, 행정병들하고도 친하고, 나랑 같이 이등병때 걸레빨았던 애들은 소대막론하고 어지간하면 안건드려서 상황병이던 후임들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운전병아저씨들하고도 친해서 선탑도 드라이브 즐기듯하며 재밌었다.
문제는 3일에 한번. 주로 본부간부들과 도는 야간철책순찰.
나야 하루 2~3번 산타던 가락으로 휙휙 날아다녔지만, 사무실이나 수송부등에서 오래 걷는 일 없는 간부들에게는 평탄한 산길타는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힘들면 괜히 인솔하는 나한테 짜증을 내었고, 이것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2주 만에 당직 그만두겠다고 한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병사들에게 굉장히 잘해주면서 자기 일도 잘하던 본부시설장교와 순찰을 돌게 된 날이었다.
"충성. 오셨습니까?"
"어. 충성. 당직사관. 고생이 많다."
자정이 될 즈음, 시설장교가 혼자 차를 몰고 중대로 왔다.
후임장교들에게도 친절한 사람이라, 소대장은 여기 편히 앉으십쇼.라며 자리를 내주고, 미리 PX에서 사둔 다과를 꺼내었다.
"이야. 오늘 XX이랑 순찰인가?"
"네. 그렇습니다."
"XX이랑 나가면 나야 편하지."
그런데 어째 시설장교가 뭔가 할 말이 있나보다.
"시설장교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어??? 아니...그게 말야..."
당시 부대내에 머시기 공사일로 할 일이 많아서 이때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온 시설장교는 피곤하기도 하고,
나가면 최소 2~3시간은 걸리는 순찰이 벅찬 모양이었다. 그래서 짬되는 부사관이나 군무원들이 쓰는 가라를 치려는 모양이었다.
성격상 이런 짓(ㅋ)을 저지를 양반이 아닌데 오죽하면 이럴까싶어 소대장은
"야. 그럼 어쩔수 없다. 이따 후반야때 태그 들려보내서 시간맞춰 찍으라고 해야겠다."라며 딜을 제시했다.
원래는 드럽게 꾸시렁거릴 일인데, 워낙 병사들에게 잘대해주는 시설장교인지라 행정반분위기는 마, 그럽시다!!! 고마워 얘들아!!!로 대동단결하고 있었다.
"그러지말고말입니다. 그냥 저 혼자 돌고 오겠습니다."
무슨 깡이었을까. 내가 그냥 혼자 돌고 오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안될 일이었다. 주간에도 전령완장없음 병사 혼자 못돌아다니는데, 야간에는 그냥 거동수상자로 발포당할 일이었다.
"후반야 애들 그 시간맞춰서 초소찍는것도 일이고, 각 소대마다 도는 시간이 있는데 언제 지경선에 시간맞춰서 만나가지고 돕니까.
그냥 멍뭉이 산책시킨다하고 다녀올랍니다.
애들 놀래지않게, 전반야애들한테 순찰자 한명이라고 알려주고, 후반야 애들 투입할때도 저 혼자 도는 중이라고 알려주십쇼."
그렇게 중대에서 키우던 개 목줄채우고, 워키토키 하나 랜턴하나 순찰태그챙기고 수통에 물채우고 엑스반도차고,
5~10분마다 중대로 연락하겠다. 최대 10분이상 연락없음 애들 보내기로 하고 중대를 출발했다.
생각이상으로 돌만했다.
밤공기는 서늘하고 맨날 묶여지내던 멍뭉이도 느닷없는 야간산책이 즐거운듯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내 보조에 맞추어 잘 따라왔다.
일단 끊임없이 투덜대는 간부가 없고, 계급차이때문에 꾹 참고 가야하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너무 좋았다.
중간중간 순찰자나 점령초소들어가서 애들이랑 ㅋㅋㅋ거리며 이야기하다 헤어지고 빈 초소도 그냥 들어가서 태그찍고 내려왔다.
중대에 내려오자, 행정반 앞에는 당직사관과 시설장교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기다리다가 내가 보이자 손까지 흔들어준다.
이 일은 불문에 부치기로 했고, 다음 날 선탑으로 본부에 가자 시설장교는 나와 운전병을 PX로 데려가서 거하게 쐇다ㅋ
그런데 어디서 소문이 퍼진건지, 나랑 야간순찰걸리면 나 혼자 돌다온다고 간부들 사이에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염치들은 있는지, 줴훈줴훈. 나 열나는것 같아, 줴훈줴훈 나 업무보다가 여기 콩해쪄. 진짜야 요기봐바염. 빨갛잖아.등등 다양한 핑계들을 들고오셨고,
떼쟁이들 데리고 다니느니 혼자 가는게 마음이 편한 나는 오히려 어이쿸ㅋㅋㅋㅋㅋㅋ 계십쇼. 혼자 후딱 다녀오겠습니다.라며 훌쩍 다녀왔다.
물론 다들 맨입으로 쓰윽하지는 않았다.
대개는 내가 본부에 일있어가면 PX에서 양껏 사주었고, 그렇게 안면튼 간부들 덕분에 양으로 음으로 군생활하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걸리면 순찰 안 돈 당신들이 큰일나지, 순찰 돈 내가 더 큰일나겠냐는 되도않는 자기변명을 하고 있었고,
원래 살던 집이 아파트라 큰 개랑 산책도는게 어릴적부터 로망이던 나에게, 비록 밤일지라도 덩치 큰 허스키와 산책도는 기분으로 순찰을 돌아 나도 좀 만족해하고 있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화랑."
"담배. 야~수고들한다~."
"충성. X병장님. 또 혼자 돕니까ㅋ 내 봤을때 본부 저러다 한번 작살나지말임다."
"나는 차라리 이게 편해ㅋㅋㅋ."
다른 소대 대공초소에 올라왔는데, 사수는 나와 같은 고장에서 와서 꽤나 친한 후임이고, 부사수는 귀신본다는 그 신병이었다.
"오~B. 형이 임마. 니들 뚫을라고 졸라 살금살금 올라왔는데 잡아내고말여ㅋㅋㅋ 졸라 A급이여."
"아...아닙니다."
"야. B 우리 소대줘. 아주 그냥 A급이네."
"그럴랍니까? 야간경계만 잘서지, 다른건 폐급이지말입니다."
농담으로 말한건데 사수놈 표정이 별로 안좋다.
아무래도 B 이 친구가 귀신본다는 소문이 신경쓰이기도 하고, 실제로 낮에는 영 어리버리타고 해서 자기 소대고참들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들었기 때문이다.
"마. 담배 한대 태우자."
"기다렸지말입니다ㅋ"
"아. B. 너도 태우던가?"
"아...아닙니다. 저는 비흡연자입니다."
"맞다. 너 비흡연자지. 어디...자. 이거라도 좀 씹어."
건빵주머니에서 저녁에 PX에서 사서 챙겨둔 '오다리'를 꺼내서 B에게 주었다.
흡연자들이랑은 담배피우고, 비흡연자들한테는 오다리를 사서 나눠주며 순찰을 돌아서 애들은 내가 오는걸 디게 좋아했다.
(착실한 군인들은 절대 이러지 않습니다. 저는 쳐빠진 군생활을 해서 그랬구요ㅋ)
물론 공짜가 아니라, 이 놈들을 뚫을려고 멍뭉이는 잠시 근처에 묶어두고 판초우의까지 뒤집어쓰고 엉금엉금 기어오기까지 했다.
잡아내면 자그마한 포상이, 뚫리면 내려와서 아침에 니들 위에 내 밑으로 다 데리고 온나刑에 처해지지만,
순찰자 올라오는 시간이야 뻔하니 어지간한 폐급들 아니면 뚫리지도 않았다.
"B야."
"이...이병. B."
"니 어디아프나? 얼굴색이 안좋은데?"
"저거 또 뺑기치는겁니다. 마. 니 또 귀신보이나???"
후임들한테 장난도 잘치고 농담도 잘받아주는 애인데, 그놈의 귀신본다는 소문과 백일휴가도 안간 신병 신경써주느라 말이 좀 날카로웠다.
"야. 그런 말 하지말고 애 진짜 얼굴 표정 안좋아."
그렇게 말하는데 갑자기 B가 주저 앉아버렸다.
랜턴을 켜고 얼굴빛을 확인하니 입술까지 하얗게 질려있었다.
어? 야 괜찮냐? 일어나려고 하지마. 그냥 앉아있어. 라며,
힘없이 주저앉아버린 애 하이바벗기고 탄띠풀어주고 한참을 팔다리를 주무르자,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고 눈에 촛점이 맞춰졌다.
"야. 괜찮아??? 내려갈래???"
내가 워키토키를 꺼내 중대를 부르려하자, B가 아닙니다. 이제 괜찮습니다.라며 일어났다.
무너지듯 주저앉던 애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서 우리는 좀 안도했다.
"워워. 무리하지마. X병장. 내려갈려면 시간 좀 있지말입니다."
"어? ㅇㅇ. 마지막 초소까지 시간 좀 남았어."
"야. X병장이 여기 있을거니까, 너 거기 앉아서 좀 쉬고 있어. 괜찮지말임다?"
"고참을 부려먹냐-_-;;; B야. 야말대로 너 좀 앉아서 쉬고 있어. 물도 좀 마시고."
어느새, 얘네들 한번 뚫어보려고 저쪽 나무둥치에 묶어놓았던 멍뭉이가 B곁으로 와서는 그 오다리 나도 좀 줘.라며 킁킁대고 있었다.
우리는 철책 밖에 어쩌다 차 한대 지나가는 시골국도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나눠피우며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었고,
B도 정신차린것 같고, 슬슬 내려갈 시간이 되서 멍뭉이데리고 내려갔다.
조심히 내려가십쇼 충성.
옹야~니들도 욕본나~
B는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것 같았는데 수고하십시오. 충성.하고는 내려보냈다.
"B. 저거 사수가 너무 갈구나??? 후임갈구고 하는 애가 아닌데...야. 근데 너 어떻게 목줄 풀고 왔냐???"
그렇게 마지막 빈 초소를 찍고 중대에 도착하자
행정반에는 오늘 같이 순찰돌았어야 할 수송관이 위병소를 통해 배달시킨 호X이두마리치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후~
그리고 그 100여일동안 심적으로 지쳐버린 내가, 그냥 몸이 빡쎄고 말지.라며 속없이 당직하고 싶다고 징징거리던 맞후임에게 당직넘겨주고,
초소경계로 돌아가면서 가끔 땜빵할때 말고는 당직생활을 끝내었고,
야간순찰도 인솔병사들 피로누적이 문제가 되어 간부1+군무원1로 돌리는 걸로 바뀌었다...진작 좀 바꾸지-_-
"혹시 X중대에 XXX병장 아니세요?"
긴긴밤 혼자사는 사내가 할게 뭐있겠음. 술빨며 게임하는것이 최고임. 여자친구있으면 데이트라는걸 한다죠??? 그런데 없어ㅋ
그럴양으로 마트가서 술이랑술이랑술을 카트에 담고 있는데, 웬 커플의 남자쪽이 나에게 말을 건다.
아까부터 남자 혼자 카트 가득 술을 쓸어담는걸 유심히 보길래, 뭐뭐. 솔로 술사는거 첨보냐???라며 혼자 빈정상한 참이었다.
적군이다!!! 라며, 총부리를 겨누려는 나에게 그 남자는,
"형. 저예요. X소대 B."
라고 정체를 밝혔다.
한참을 기억을 더듬어서야 이 친구를 기억해낼수 있었다.
18개월이라는 짬차이. 거기다 다른 소대. 얼른 기억을 해낼리가 없었다.
"어!!! 너 그..."
귀신본다던 그 신병??? 이란 말이 목젖까지 치고 내려갔다. 옆에 여자친구한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얼른 꿀꺽 삼켰다.
"그 X소대 맞지??? 맞네. 기억나."
"오랜만이예요. 형. 인사해. 나 군대있을때 다른 소대 한참 위 고참이었는데, 디게 잘해주셨어."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뉘신가??? 여자친구신가? 설마 여자친구우??? 아앙???"
"아뇨. 결혼했어요. 집사람이예요."
적국의 민간인이라니 데프콘1까지 날카로워진 신경이 금세 데프콘4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만난것도 반가운데 같이 저녁이라도 드실래요???래서, 장보고 이따가 XX통돼지라고 내 단골집있으니 거기서 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내가 형이기도 하고 신혼부부에게 결혼식 못갔으니 축의금대신이라며 얼마 안되지만 내가 산다 그러고 통돼지볶음으로 저녁을 했다.
짬차이가 많이 나서 겹치는 부분이 적었지만, 그래도 이 친구와 나 사이 중대원들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이 훅훅 갔다.
그때는 얼굴도 하얗고 초소에서 내 눈 앞에서 쓰러지기도 해서 비실비실한 이미지로 남아있었는데,
몇년 만에 만난 B는 얼굴은 여전히 남들보다는 하얗지만, 소주도 병이 쌓여갈 정도로 마시고 목소리도 굵고 당당한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술이 좀 돌고, 계속 존댓말해주는게 불편해서,
야 겨우 2살차인데 말 편하게 해. 내가 집에 너만한 동생이 있어ㅋ라며 겨우 말 놓고 이야기나누고 있었다.
"형. 그때 기억나???"
"어느 때 말이냐??? 봄에 눈 졸라게 와서 너네 소대 대기초 무너진거???"
"아니. 나 대공초소에서 쓰러진거."
"아~ 내가 오다리 주니까 성은이 망극해서 다리 풀린거???"
"아니. 나 그때 귀신봐서 다리 풀린거야."
입에 탁 털어넣었던 소주를 분무기처럼 두 부부얼굴에 뿌릴뻔했다.
"어.야.그...너 진짜 귀신보이냐??? 미안한데 나 그때 너 뺑기칠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부인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아까도 마트에서 귀신본다던 그 B???라고 할뻔한걸 겨우 멈췄는데, B가 먼저 말해버렸다.
"괜찮아요. 저도 알아요. 이 사람 그거 보는거."
이 사랑의 힘을 보라지. 새삼 감동하고, 이거는 이미 술을 많이 마셨지만 맨정신에 들으면 안된다.며 껍데기볶음과 소주를 더 시켰다.
B가 야간경계 하나는 잘 서는 이유는 우리의 오해와 다르게 그저 밤눈이 밝을 뿐이었다...
그 귀신이란것도 항상 보이는건 아니라고 했다. 감기같이 어딘가 몸이 좀 안좋을때나 보인다고 한다.
그때는 신병. 항상 긴장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인지, 군대라는 곳이 귀신이 많은건지...
굉장히 자주 보였지만, 내색하면 이상한 놈 소리들을까봐 꾹 참다가, 자기 동기한테 살짝 말했는데 이 새끼가 소문을 내버린거였다.(고얀놈.)
다행히 중대원들이 신병이 뺑끼칠려고 그런다고 웃어넘겨줬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다들 가볍게 흘려들었음. 이등병의 수호자, 행보관님빼고)
생각해보니 항상 아웅다웅하던 나와 동기와는 달리, 얘네는 소대에 둘뿐인 동기끼리 말도 안해서 너네 싸웠냐???라고 물어보기까지 한 기억이 났다.
"오늘도 야간순찰 X병장 혼자도나보네. 수송관 행정반에 앉아있드만."
"혼자서 안무섭나??? 뭐 그 짬이면 눈가려놔도 돌긴하겠다만..."
"그 반지하초소도 혼자 들어갔다가 나올거 아냐. 난 거기 낮에 훈련때 점령하러 들어가도 오싹해서 싫던데."
"귀신나오면 로또번호 물어볼거래. 그리고 멍뭉이있잖아. 개들은 귀신본다더라. 야. 이따 보자."
"어. 순찰패 잘 돌려라."
초소로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순찰조인 C상병조가 철책을따라 올라가자, 아까까지 재잘거리던 사수는 입을 꾹 다물고 초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반야로 지금 초소에 있는게 악명높은 D상병이라, 사수는 뒤도 안보고 전속력으로 올라가는걸 간신히 따라잡았다.
사수에게 이따가 X병장 올라올건데 뭐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니랑 친하다고 넋놓고 있다가 털리지말라고 그러고 D상병조는 내려갔다.
사수는 별 말없이 하이바와 총을 초소 창문에 걸어놓고 철책 밖만 바라본다.
저 쪽 능선에 보이던 랜턴불빛이 꺼졌다가, 다시 켜진다. 순찰조가 A병장을 만난 모양이다.
그 쪽을 주시하고 있자면 순찰자들이 초소에 들어갔다가 나올때마다 랜턴빛이 사라졌다가 나타난다.
그렇게 한참을 순찰로만 쳐다보니까, 사수가 너는 철책 밖은 안보냐??? 상황보고시간됐으면 말을 해야 할거 아냐.라며 쿠사리를 놓는다.
통신보안. 대공초소...X병장말임까??? 아까 AAA초소 쪽에 랜턴불빛 봤음다. 시간맞춰 내려오라고 전달함까??? 알겠슴다. 충성.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사수는 TA를 내려놓고 너무 순찰로만 보지말고 철책 밖도 보고 그러라며, 걸어놓았던 총과 하이바를 챙겨든다.
바스락.
사수가 순간 풋. 웃으며 수하할 준비를 한다.
뚫는다.뚫는다.하지만, 평소 군생활잘하는 후임들 있는 초소는 일부러 저렇게 발소리를 내며 온다.
자기는 뚫을려고 졸라 솔리드 스네이크처럼 온다는데, 그건 좀 아닌것 같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화랑."
"담배. 야~수고들한다~."
"충성. X병장님. 또 혼자 돕니까ㅋ 내 봤을때 본부 저러다 한번 작살나지말임다."
"나는 차라리 이게 편해ㅋㅋㅋ."
X병장은 나를 보며 뭐라뭐라하는데 그 말이 얼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낮에 분대장들만 군장돌려서 미안해졌는지,
분대장들이 행보관님과 면담하는 동안, 전 중대원이 단독군장으로 주도로따라서 뜀걸음을 해서 몸이 너무 피곤한 모양이었다.
X병장 등 뒤에는 그들이 있었다.
(그때는 성인남자 하나랑 아이들 셋이 보였답니다.)
다른 소대까지 돌며 나눠주고 했는지, 너 이거 다 먹어도 됨.이라며 준, 절반정도 남은 비닐이 뜯겨진 오다리는 좀 눌러져있었다.
X병장과 사수가 자기들끼리 ㅋㅋㅋㅋ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칙칙거리며 불이 피어오르는 라이타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그들은 스르륵 X병장이 주머니에 넣지않고 만지작거리고 있는 라이터에 모여들었다.
특히 아이들 귀신이 X병장의 어깨며 팔이며 다리에 매달리는데, X병장은 담배를 피우면서 그냥 어디가 뻐근해서 두들기듯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매달린 데를 주먹으로 가볍게 두들겼다.
멍하니 그걸 보다가 입에 넣은 오다리의 짠맛이 느껴져 앗!!!하고 정신을 차리자, 아이들 귀신을 보고있느라 잊고 있던 성인남자귀신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 시선은 익숙하다. 너 나 보이지???라고 말하는 듯한 그 시선. (귀신하고 대화같은건 해본적은 없답니다)
어릴때 그런거 보일때마다 무섭다고 앙앙 울어댔고, 그런 반응을 보이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아이 취급해대서,
언제부턴가 그들이 나를 그렇게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버리곤했는데, 그만 제대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몸이 빧빧하게 굳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비명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넘어오지 않는다.
소름돋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이 다가오는데 담배를 다 피우고 수통물로 담배불을 끄던 X병장이 나를 쳐다본다.
"B야."
"이...이병. B."
"니 어디아프나? 얼굴색이 안좋은데?"
"저거 또 뺑기치는겁니다. 마. 니 또 귀신보이나???"
그 말에 그것들이 일제히 사수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것의 시선이 떨어지자, 온 몸의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아버렸다.
잠시 멍해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하이바와 탄띠는 주위에 널부러져있고, 사수와 X병장이 내 이름을 부르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 무서운 시선을 보내던 남자귀신은 안보이고, 아이들 귀신도 둘만 보였는데 이 쪽은 신경도 안쓰고 승전포 주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자 사수와 X병장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고 있다.
야. 그냥 앉아있어. 일어나지마.라는데 안보였던 남자귀신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괜히 주저앉아있으면 해코지 당할것 같아 벌떡 일어나보였는데, 그 남자귀신은 이제 이쪽에는 관심이 없는 듯 멀찍이 떨어진 풀숲으로 스윽하고 사라졌다.
중대에 연락하려던 X병장을 말리고 잠시 앉아있자니,
사수가 나 정신차릴동안 어차피 순찰시간때문에 좀 더 있어도 되지않냐며 X병장에게 좀 더 있다 가라한다.
X병장도 그러지 뭐.라며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순간 바람이 휙 불어 그 쪽을 쳐다보니 승전포 주위의 아이들 말고, 안보이던 아이귀신이 눈에 들어오고,
X병장이 어딘가에 묶어놓았을 멍뭉이가 으르렁거리며 우리에게 뛰어왔다.
그 남자귀신이 사라진 방향과 승전포, 아까까지 자기가 묶여있던 방향을 두리번거리던 멍뭉이는 콧김까지 내뿜으며 씩씩거리다가,
내 발치에 오다리를 보고는, 그거 나도 먹을 줄 알아. 그러니까 한입줘봐.라는 평소 표정으로 헥헥거렸다.
"통신보안. 어. 나. 니 고참. 우리 아까 저기서 만나지 않았니. 이 새끼야. 잤니??? 다시 뚫으러 가줘???
여기 B 지금 몸상태안좋은거 같으니까, 순찰 경계 짧게 돌리고 대기초에서 쉬게해.
어. 내 보기에는 상태 별로인것 같은데, 자기 말로는 괜찮대. ㅇㅇ. 그려. 다른 조가 수고 좀 해라. 이따보자."
X병장은 소대 전초소에 TA를 쳐서 내 몸상태가 안좋으니 다른 조가 순찰 경계를 좀 더 돌라고 알렸다.
"B 너는 무리하지말고 더 안좋아지면 바로 말해, 너도 B 잘 보고 있다가 상태안좋다 싶음 바로 중대로 철수해.
나도 내려가서 당직사관 안자고 있음 말해놓을께."
"알겠슴다. 조심히 내려가십쇼 충성."
"옹야~니들도 욕본나~...야. 멍뭉이 너 목줄 어떻게 풀고 왔냐??? 내가 대충 묶었나???...가자 좀. 오늘은 왜 이렇게 으르렁대냐."
내가 X병장이 이것저것 말하고 내려가는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힘없이 경례만 한 이유는...
어느새 그들이 다시 모여서 순찰로를 내려가는 X병장을 멀찍이 따라내려갔기 때문이다.
X병장...뒤...뒤에...귀...귀신들이...라는 말이 쉬나오지 않았다.
혼자 어두운 산길내려가야하는데 겁을 줄것도 같고 또 이상한 놈 취급받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평소같음 혼자 산길도는 X병장 중대에 도착하면 상황병이 전초소에 알려주곤했는데, 그 날은 그런 말이 없었다.
후반야 철수하고 중대도착해서 아침먹으러 취사장들어가니, X병장은 군대리아를 야무지게 먹고 있었다.
어디 다친데도 안보이고, 취사병한테 빵 남지??? 더 먹어도 되냐???라고 말하는거보니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우리 소대 당직부사관은 내 맞후임이 분대장을 달면서 넘겨주었고,
내가 혼자 야간순찰을 도는 일은 없어졌다.
"어우. ㅆㅂ. 완전 토요미스테리극장이네. 내가 다른건 별로 안무서워했는데, 토요미스테리극장만 무서워했거든."
"그날 형 무사히 도착했다고 연락없어서 걱정했거든."
"내 기억이 맞으면 아마도 수송관이 나 고생했다고 닭시켜줘서 그거먹느라 상황병이 TA치는거 깜빡한거같애."
"그랬구나..."
"엌ㅋㅋㅋㅋㅋㅋ 나 군대있을때 귀신같은거 졸라 보고싶었는데, 진짜 있긴 있었구나."
"그거 진짜로 보이면 그런 말 안나와."
"야. 지금도 보이냐???"
"요즘에는 별로 아픈데도 없고 그래선지 통 못봤어."
"제수씨가 잘 챙겨주시나보구만. 몸건강하다고 자기 입으로 말할 정도면."
몇년 뒤, 내가 다른 동네로 이사가고 그 친구부부도 캐나다로 직장을 잡게 되어 이민을 가게되기 전까지,
이 부부는 귀찮아하지않고 나랑 저녁도 먹어주고 볼링도 치러다니고 여행도 가고 가끔 소개팅도 주선해주며 어울려주었다. 감사감사.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소개팅나오셨다가, 안구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여성분들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B는 군생활하면서 본 귀신 중에 그날 본 귀신들이 가장 또렷하게 보였고, 가장 섬찟했다고 한다.
아이귀신들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성인남자귀신은 정말로 누군가 해코지할것 같아서 무서웠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숱하게 밤길다니면서 이상한 낌새같은건 단 한번도 느껴본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들은 군대에서 귀신도 잘보더만, 왜 나한테만 안보여.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B의 말로는, 우리 멍뭉이덕분이라고 했다. 개들은 귀신을 본다니까. 진심으로 부탁하는데 밤에 산길을 혼자 다니지 마란다.
허나, 왼팔에 흑염룡대신 청개구리가 살고 있는 나는.
요즘도 밤에 월급루팡짓하다가 눈치가 보이면 손전등 하나들고 공장창고 순찰돌며 내가 이렇게 쓸모가 많음을 어필하기도 하고,
시골할머니집가서 할머니의 넘치는 손주사랑에 과식하고 속 더부룩해서 잠 안오면 밤에 논길산길 산책만 잘 다니고 있다.
언젠가 하도 하던 일이 안되서 답답한 마음에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점집을 간적이 있는데,
인상이 귀신도 도망칠 만큼 강렬하다고 해주셨다...
영감님...눈이 안보이시는 장님이라고 안하셨나요???
같이 따라와준 내 친구가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버려서 졸지에
"귀신이 도망가고 시각장애인도 알아볼 만큼 못생긴 놈." 이 되버렸다. 젠장.
그냥 이렇게 생겨먹어서 보고싶다해도 귀신 못보나 하고 살고 있다.
나는 한번도 본적없는 죽은 귀신보다,
사람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같지 않은 짓을 하는 것들이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