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9vmcqS01USM
강우식, 사랑
바람의 순리대로 쏠리는 풀잎이듯
잠결에도 아내 곁으로 돌아눕는다
무심으로 하는 이 하찮은 일들이
오늘은 내 미처 몰랐던 사랑이 된다
최춘희, 얼레지꽃
식물도감에서 보던 너를
남해금산 숲속에서 처음 만났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센서가 작동하는
디지털 체중계같이
산을 밟고 선 몸무게에
내장된 봄의 전자 칩은 여기저기
보랏빛 비상등을 켠다
비바람과 우레에도 흔들림 없던
속내 들켰다는 것인지
구급차로 실어 나르기 바쁘다
첫눈에 소울메이트임을 알았다고
불꽃심장의 쌍둥이 아니냐고
산 전체를 내어 주겠다고
덤벼드는 너
이미 가슴 속 숨어 피던
너는 여기에 없다
뜨겁게 타오르는 꽃잎의 열기에 놀라
남해바다 푸른 물결만
몽돌해안에 돌아누울 뿐이다
카메라 셔터를 열어 해 저물도록
내 안에 너를 퍼 담는다
전동균, 나뭇가지를 꼭 쥐고
쏘내기 퍼붓듯 쏟아지는
만개의 꽃빛들보다도
이 꽃빛들을 안고
새로 나온 푸른 이파리들보다도
그 뒤에 숨어 있는
뒤틀리고 구부러진 나뭇가지들에게
더 자주 눈길 건너가고
가슴 먹먹해지나니
이 서러운 묵언(默言)의 나뭇가지들
꼭 쥐고
어루만지나니 그 누구의
몸인 듯 마음인 듯
김인수, 섬
거니는 숲 속
작은 섬 하나
와 닿지 않고
열어 보지 못한 섬
푸른 숲을
단단히 물고 있다
외롭지 않느냐고
마을로 가고 싶지 않느냐고
행복을 꿈꾸고 싶지 않느냐고
대답이 없다
단단한 가슴이 빛나는
숲 언저리에
소리 없이 서 있는
섬 하나
송수권, 혼자 먹는 밥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뒤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