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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게시물ID : lovestory_865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5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1/23 12:06:2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d-LvJ7Orhgg





1.jpg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2.jpg

김규동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3.jpg

김사인지상의 방 한 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 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 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4.jpg

김윤현노루귀

 

 

 

너를 오래 보고 있으면

숨소리는 작은 꽃잎이 될 듯도 싶다

너를 오래 오래 보고 있으면

귀는 열려 계곡 너머 돌돌 흐르는 물소리

다 들을 수 있을 듯도 싶다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듯

내 마음 속에 등불 하나 환히 피어나

밤길을 걸을 듯도 하다

마음으로 잡고 싶었던 것들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너를 보고 있으면







5.jpg

이영옥마늘 한 접

 

 

 

베란다에 걸어 둔 마늘을 내렸다

이건 마늘 한 접의 무게가 아니다

육 쪽의 거푸집만 남아 버석인다

손만 닿아도 허물어지는 몸

이렇게 모든 것을 비워내기까지

마늘의 마음은 어땠을까

햇볕이 닿는 쪽으로

쭈볏쭈볏 길을 냈을 텐데

제 구실하지 못할 싹을 키우느라

갈급증과 싸우던 흔적이 노랗다

썩은 충치처럼 달그락거리던 마늘은

입관을 마치고 조용히 누워있다

저울위에 올려도 한 줌 먼지처럼

눈금 한 칸을 밀어내지 못한다

이건 시끄러운 삶이 모두 빠져 나가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고요 한 접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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