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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게
게시물ID : lovestory_865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황희두
추천 : 3
조회수 : 4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1/22 00: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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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앞으로 절대 울지 않고, 씩씩하고, 멋지게 열심히 살아갈게요.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먼 훗날 만나요. 사랑해요, 아버지"


아버지 살아계실 적 전해드린 나의 마지막 말. 아쉽게도 이미 의식을 잃으신 상황이라 아버지의 대답을 듣진 못했다. 다만 굳게 다문 입술 대신 황달 섞인 누런 눈물이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물론 절대 울지 않겠단 약속을 지키진 못했다. 여전히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오실 거 같은 아버지,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후회와 가득 찬 그리움,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아버지의 영정사진


# 영원히 그 자리에.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고 아버지의 흔적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하지만 1년 전과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 하나 있다. 동생의 방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핑크색 옷을 입은 채 해맑게 웃고 계신 아버지의 영정 사진만큼은 1년째 제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그 사진 속에서 항상 본인을 지켜보고 계실 거라는 동생의 믿음이다. 오랜 무신론자인 나도 이 생각만큼은 동의한다. 평생 아버지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거란 그런 믿음.


생전 몇 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던 아버지를 제대로 마주한 건 작년 10월, 갑작스러운 간암 말기 소식을 접한 후부터였다. 그전까지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꺼려했다. 아마 대부분의 자식들이 나처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마치 언제라도 그 자리에 계속 계실 것처럼 믿은 채로. 나 또한 아버지의 희끗한 머리, 주름살이 부쩍 늘어난 걸 느꼈지만 그럼에도 영원히 그 자리에 계실 줄만 알았다. 죽음은 전부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황장엽 선생 『변증법적 전략 전술론』


아버지의 애정표현 방식


평소 과묵했던 아버지께선 칭찬에도 많이 인색한 편이셨다. 언젠가는 철학을 시작한 후 '헤겔의 변증법'에 빠졌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공부를 싫어하던 내가 자발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시면 작은 칭찬이라도 건네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실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께선 모니터만 응시하신 채 "열심히 해봐라"는 말만 남기셨으니 말이다. 나의 실망이 속단이었다는 사실은 다음날 아침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책상 위엔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바로 황장엽 선생의 『변증법적 전략 전술론』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아버지께 여쭙자 이런 말씀을 하셨다. 


"황장엽 선생님은 엄청난 천재셨다. 너가 어제 변증법에 꽂혔다고 해서 그 책을 책상 위에 올려뒀다. 이 책을 읽어보면 크게 도움이 될 거다. 열심히 공부해봐라."


아버지께선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서툰 애정표현 방식이었다.


@마지막 가족사진


#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 그곳에선 마음껏 눈물 흘리시길..


생전 눈물 한 방울 볼 수 없던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은 돌아가시기 직전, 이미 의식을 잃은 후에야 볼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원 간호사는 우리 가족들을 중환자실로 불렀다. 마지막 인사를 남기란 의미였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마치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아버지께서 의식을 잃은 채 누워계셨다. 얼굴도, 손도, 다리도 전부 돌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다. 그때 나는 살짝 돌아누워계신 아버지의 얼굴에서 황달 섞인 눈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무언가 하실 말씀이 많으실 텐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흘린 비통한 눈물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고 이를 통해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아버지께선 시도 몇 편 지어 선물해드릴 정도로  어머니를 사랑하셨다. 실제로 기다렸단 듯이 어머니께서 "사랑한다"며 3차례 정도 볼에 입맞춤을 하시자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심장이 멈췄다. 우리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번갈아가며 아버지 귀에 준비한 말을 속삭였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것은 어머니께서 말씀하실 때만 기계가 울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말을 전부 들었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경험 이후로 나는 주위에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떠나보내기 직전, 못다 한 말들을 귀에 속삭여 주라"라고. 분명 다 듣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


1년이 지났지만 아버지가 문득 떠오를 때마다 슬픔이 갑자기 해일처럼 밀려온다. 뒤늦게 깨달은 아버지의 고독과 이로 인한 후회를 담아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며 시작하는 시인 이채 씨의 시 한 구절을 바치려 한다. 하늘에선 원 없이 눈물 흘리시길 바라는 심정으로..


"(…)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 무엇하나 만만치 않아도 / 책임이라는 말로 인내를 배우고 / 도리라는 말로 노릇을 다할 뿐이다 /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 눈물이 없으니 가슴으로 울 수밖에 //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 아버지는 고달프고 /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출처 https://brunch.co.kr/@youthhd/116/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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