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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화, 키가 같다
김제 만경 푸른 벼논이
한여름 땡볕에 펄펄 끓어
푸른 벼논이 하늘에 가 닿아
하늘과 땅이 한 일(一)자로 입 맞추어 있다
한 일자의 길이가 너무나 길어
내 눈이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아슴한 선
똑같은 물감을 하늘에서 받아
똑같은 크기로 한없이 늘어서
햇볕 쨍 하는 한낮
구름덩이 이따금 먹물을 놓다가
둥실둥실 사라지는 의에밋들 너른 들
흩어서 가까이 보니 키가 다르나
모아서 멀리 보니 키가 똑같다
김제 만경 푸른 목숨들이
신형주, 별
가슴에 별을 간직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소멸하는 빛 흐느끼고
별이 낡은 구두를 벗어 놓는다
절대 고독, 허공에 한 획 긋는다
별을 삼킨 강 뒤척인다
가슴에서 별이 빠져나간 사람은
어둠 속에서 절벽을 만난다
김종구, 밥숟가락에 우주가 얹혀있다
그렇다
해의 살점이다
바람의 뼈다
물의 핏덩이다
흙의 기름이다
우주가
꼴깍 넘어가자
밤하늘에 쌀별
반짝반짝 눈뜨고 있다
이대흠, 밤길
이따금 반딧불이 깜빡인다
물소리 따라 길은 점점 어두워진다
산 속의 집은 보이지 않는다
까막눈으로 길 걷는다
물의 빛나는 살결은 관능적이다
나는 몇 번이고 헛딛는다
풀잎들의 마음이 드러나는지
길 옆의 잎새들 환하게 등 켠다
돌들도 제 나름의 불을 밝힌다
오래 걷다보면 모든 것이 등불이 된다
저렇게 내 앞을 비추는 것들
길을 걸으며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짓밟고 간다
안상학, 장마
세상 살기 힘든 날
비조차 사람 마음 긁는 날
강가에 나가
강물 위에 내리는 빗방울 보면
저렇게 살아 갈 수 없을까
저렇게 살다 갈 수 없을까
이 땅에 젖어들지 않고
젖어들어 음습한 삶내에 찌들지 않고
흔적도 없이 강물에 젖어
흘러 가버렸으면 좋지 않을까
저 강물 위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이 땅에 한 번 스미지도
뿌리 내리지도 않고
무심히 강물과 몸 섞으며
그저 흘러흘러 갔으면 좋지 않을까
비조차 마음 부러운 날
세상 살기 참 힘들다 생각한 날
강가에 나가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