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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 이 나이쯤의 편애
내 마음 속에
누런 구렁이 한 마리 살고 있네
휘번뜩이며 시퍼런 갈구의 뿌리
어디 몸 둘 곳 몰라 서성이고 있네
입을 벌리면 두 편으로 갈라터진 혓바닥으로부터
서늘한 냉기와 긴 엄습함이 불타오를 듯
숨죽이고 있는 이 편애의 고집
나는 사랑하리
최후의 쇠사슬에
몸을 가득 묶고서
어디 갈 곳 없는가, 숨찬 서성거림으로
기다랗게 또 한번 목을 늘려서 바라보는
이 나이쯤의
견고한 결핍, 또는 위태로운 사랑
이홍섭, 입술
수족관 유리벽에 제 입술을 빨판처럼 붙이고
간절히도 이쪽을 바라보는 놈이 있다
동해를 다 빨아들이고야 말겠다는 듯이
입술에다 무거운 자기 몸 전체를 걸고 있다
저러다 영원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유리를 잘라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시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꼭 저 입술만 하지 않겠는가
송진환, 기와불사
기왓장 하나에
삶의 무게 다 내려놓을 수야 있겠냐만
또박또박
가장 절실한 몇 마디 말들, 살아있다
새벽 범종소리에, 불경소리에, 바람소리 물소리에 씻겨
지울 것 다 지우고
전건호, 손금에 갇히다
몸은 현재에 머물러 있으나
마음은 자꾸 과거를 지향한다
내가 움켜쥐었던 그 많던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손톱에 갇힌 열 개의 반달이
조금씩 저물어 간다
생명선과 운명선이 만나는 교차로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하상만, 한 삽의 흙
땅을 한 삽 퍼서 화분에 담으니
화분이 넘친다
한 삽의 흙이 화분의 전부인 것이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물을 먹고 있는 화분을 지켜보았다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한 송이 꽃이었다
꽃에게는 화분이 전부였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한 삽의 흙이면 충분했다
우리가 한 삽의 흙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동요를
따라 부르던 시간
열이 난 이마에 올려놓은
어머니의 손
그녀가 내게 전송해준, 두 개의
귤 그림
떨어져 있어도 함께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짧은 문자 메시지들
그것들은 신이
미리 알고 우리 속에 마련해 놓은
화분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 속에서 꽃 피는 일은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