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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퍼슨의 법칙
게시물ID : panic_864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ngbi
추천 : 10
조회수 : 192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2/25 20:56:17
지난 한 달간 이 남자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라! 우리는 차마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 말하길 불행은 할부로 오지 않고 일시불로 온다 그랬던가?  지난 한 달이 남자에겐 일시불로 청구된 카드대금 결제 봉투와 마찬가지였다.
  
젊음을 모두 바쳐 키워낸 회사는 부도가 났고 하루아침에 그는 촉망받는 CEO에서 빚쟁이로 내려앉았다. 집과 자동차, 살림살이 전반을 차압당했고 자칫하면 구속될 위기에 내몰렸다. 매스컴에선 연일 그의 회사 부도사건을 떠들어댔고 기자와 빚쟁이들과 경찰들이 연이어 집으로 들이닥쳤다. 덕분에 아내는 신경 쇠약에 걸렸으며 아이들은 대인기피증을 앓게 되었고 평소 뇌졸중을 앓고 계셨던 부모님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급사하셨는데, 설상가상으로 장례식에 들러온 조의금마저 도둑맞았다.
  
어쩌면 그가 자살을 결심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그는 도로로 뛰어들어 달려오는 화물트럭 앞에 몸을 내 던졌다. 그러나 트럭은 그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며 아직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방금까지 죽음을 결심했건만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더불어 충만해지는 기운을 느꼈다. 죽음도 나를 피해갔는데, 죽을 각오도 살아간다면 해내지 못 할 일이 무엇 있겠는가! 문득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한 죽는다는 건 못난 일이야. 우리가 모두 살아 있는 이상 언젠가 좋은 날이 돌아올 거야!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그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트럭 운전기사의 욕설도 격려의 메시지처럼 들려왔다.
  
- 맞아, 내겐 가족들이 남았잖아. 모든 것을 잃은 게 아니야.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걸! 가족이 있는 이상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또한 멀리 주택단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들려오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는 그의 다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 저런 일이 없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이야.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잖아. 아내와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난 축복받은 사람이야.
  
집에 도착하면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힘껏 껴안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요즘 매일같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가까운 공원에 나들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집을 향하는 발걸음이 바빴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는 오르막이 많아 숨이 찼지만 조금도 힘이 든 줄 몰랐다. 길이 조금 헷갈릴 뿐.
  
그래서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주택단지의 연립이 자신의 집이라는 걸, 아직 모르나 보다.


***  

며칠 전 각종 심리학 효과와 법칙 모음 자료를 올렸었는데요,
그걸 소재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쓰면서 연습하곤 했었어요.
그 중 짤막한 글 하나 올려봅니다. 연재사이 잠시 쉬어갈 겸~
출처 겁퍼슨의 법칙 :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일수록 잘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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