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섭, 물수제비 뜨는 날
때로 가슴에 파묻는 사람도 있어
그게 서러울 때면
강가에 나가 물수제비나 뜨지요
먼 당신은 파문도 없이 누워
내 설움을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지요
그러면 나도 어린아이처럼 약이 올라
있는 힘껏 몸을 수그리고
멀리, 참 멀리까지 물수제비를 떠요
물수제비 멀리 가는 날은
내 설움도 깊어만 가지요
조정권, 붙어 지내다
흑염소 옆에서
손님처럼 지낸다
이곳에 와 보니 사람들 마음에서 사라진 평온함이
다 모여 살고 있구나
산에서 내려오는 저녁의 염소와
염소 떼 따라 내려오는 산그늘
갓 핀 들꽃 향기와
붙어 지낸다
아무 뜻 없는 마음
들판에서 팔도 벌려본다
사람들 얼굴에서 싹 가신 잔잔함
물가에 모여 살고 있다
저녁 때 사람들이 길 낸 들길로 들어가
쑥대처럼 자란 고요와
일본 종이 같은 보랏빛 종꽃
방울소리
내 안으로 들여다 놓는다
장석남, 민가(民家)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
과연 이 말이 맞을까
저녁 햇빛 한줌을 쥐었다 놓는다
초록을 이제는 심심해하는
8월의 가로수 나뭇잎들 아래
그 나뭇잎의 그늘에 앉아서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는 말을
나무와 나와는 지금 점치고 있는 것인가
종일 착하게 살아야 보이는 별들도 있으리
안 보이는 별이 가득한 하늘 바라보며
골목에서 아득히 어둡고 있었다
첫 나뭇잎이 하나 지고 있다
박후기, 후회
사랑은 언제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당신에게 엎질러진 마음
돌이킬 수 없는
강물이 되어 흐르나니
물길을 막는 사람아
밀려오는 후회를
무슨 수로 감당하려 하는가
이창수, 별을 세다가
별을 세다가
너를 보아버렸다
북쪽 하늘 쓸쓸히 노숙하는
별을 따라가다
지극한 마음이 고여 출렁거리는
우물을 보았다
우물물 두레박으로 퍼다 주는 소리에
사방을 기웃거리다가
깊은 볼우물 가진 얼굴을 떠올려보고
그 허방을 메우지 못한 서운한 마음으로
밤 물결 아득한 하늘을 바라보다
오오 지극한 별 하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