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참나무
참나무 한 그루 서 있다
그래 내가 물었다
참나무야
너는 어떻게 늙어 가니?
가능한 시선을 멀리 두고 살지
그러면 아직 나를 중심으로
별들은 순행하고
하루쯤 늦은 신문이라도 받아 볼 수 있겠지
좀 외진 곳에 살더라도
그늘을 넓게 확보하는 게 좋아
지금 세상은 빛을 너무 받아 지랄발광하지
깊게 패이고 썩은 몸에서 맛나는 버섯이 자라고
딱정벌레 같은 가족은
내 몸에서 흐르는 진땀을 먹고 산다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담는 그릇
언젠가 허옇게 마른버짐 피우며 부러지겠지
그때는 군불 때는 땔감
그때가 사실 내 삶의 절정이지
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면
탁, 틱, 툭 짧은 외마디 비명
그대로 숯이 되겠지
숯에 스며든 격문 같은 시 전사 같은 삶
그대로 천년쯤 시간을 견디며
사람을 기다리고 있겠지
김유선, 누수(漏水)
사람 몸이 물이라니
사람 꿈도 물이어서
꿈만 꾸다가 깬 어느 새벽
누수가 되어버린
몸의 꿈을 본다
언제부터일까
누수된 사랑
누수된 믿음
믿음의 70%가 누수되니
말에도 물이 없어
부딪칠 때마다 소리가 난다
장만호, 자전
밤이 왔다
지구가 다시 돌아누웠다
먼 데서부터 먼 데로
습관적으로 피고 지는
점진적인 가로등
거리의 아이들은
골목을 나와 골목을 돌아가고
밤의
꽃나무 한 그루
뒤척이며 제 중심을 들여다 보고 있다
정희성, 희망공부
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
만약에 우리가 희망함이 적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을 비추어줄까
장석남, 뻐꾸기 소리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봉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