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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건 다 아껴도, 이것만은 써야겠다 하는 아이템
게시물ID : beauty_863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컷수컷
추천 : 19
조회수 : 1205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6/10/25 16:00:32
내가 그것을 만난지 어언 10여년. 하루에도 면도 두번을 해야 덜 거뭇거뭇하게 보이는, 남성호르몬 죄 수염으로 갔나싶을 만큼 빠르고 두껍게 자라는 모발들 덕에 나의 하루일과는 빠짐없이 면도로 시작되었다.

면도는 내게 있어 단순한 세안, 위생 개선행위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요, 그날 하루의 컨디션을 결정짓는  필수요소였다.

면도없이 시작하는 하루는 다들 나와 눈을 못 마주쳤다. 이틀을 면도거르자 어머니가 거지새끼 같다며 다그쳤다. 사흘을 거르자 역전 노숙자아저씨가 구걸을 피해지나갔다. 때문에 나는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않는 이상, 매일 내 뺨과 턱과에 칼을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면도 후 울긋불긋 올라오는 피부하며, 머리를 띵하게 만들 정도로 독한 알코올향의 애프터쉐이브는 가히 견디기 어려웠다. 수염은 산적마냥 나면서 피부는 예민해 빠져가지고 면도를 할때마다 꺼스럽고 따가웠다.

불운하게도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은 성향의 면도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 학창시절 최고 선망의 대상은 문과이과 탑먹은 놈도, 옆동네 여고에서 인기많은 미남도, 매일마다 벤츠 탄 운전사가 등하교를 도와주는 돈많은 집자식도 아니었다. 사흘에 한번 면도한다는 놈, 일주일에 한번 면도한다는 놈이 내가 제일 부러워한 부류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놈들은 하루24시간 중 면도하는시간 10분을 나보다 더 유익하게 다른 것으로 누릴 수 있었고, 면도기 구입비용하며 면도날, 면도거품, 애프터쉐이브 비용까지 하면 나보다 훨 돈을 아낄수 있었다(중략)
이런 연유로 나는 내 피부에 맞는 면도방법이나 제품에 대해 누군가의 조언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하나하나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내 몸에다 직접 비교해가며 익히는 수 뿐이었다.

남성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면도 관련 페이지는 스크랩도 해가며 온갖 정보를 탐독했다. 나와 맞지않는 정보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면도할 땐 꼭 수염난 방향으로 하라더라는, 면도를 해도 안한 것같이 보였다. 화장제품에 대해 아는게 없었기에 이것저것 제품을 시행착오 겪어야했다.

여사친이 추천해준 헤라 스킨은, 화장솜에 묻혀 면도끝낸 부위에 붙이는 순간. 알코올 램프로 달구는 기분이었다. 유분기 많은 로션은 피부가 번들거리는 와중에 면도부위만 따끔거리는 이상한 효과를 선사했다. 클라린스 같이 튜브 하나에 몇만원 하는 외국 제품은, 향이 좋고 유분기를 확 잡아주었지만 경제적 부담이 컸다. 양도 작아서 한달이 못가 새 제품을 사야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인생이란 건 어느날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들이 종종 있기 마련이었다. 어떻게 그 제품을 택했는지 기억도 나지않는다. 정말로 그 제품은 내 기억 어느 타이밍에 개입하여 자리잡았다. 제품의 이름은 페이스 프로텍터. 영국에서 건너온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더바디샵의 제품이었다.

이 제품이 놀라운 것은, 면도 후 거품을 씻어낸 다음 피부의 수분이 말라가며 함께 찾아오는 따끔거림을 순식간에 없애준다는 것이다. 면도하다 상처를 입어도, 평소보다 좀더 깔끔하게 면도를 해서 피부가 뒤집어지려는 때도 이 제품을 바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듯 피브부가 진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분기를 잡아주는데도 효과적이었다. 내 얼굴은 지성이 많아, 애초 기름종이를 낭비할바에 한번 세안하고마는 쪽이었다. 헌데 페이스프로텍터를 바르면 그날은 얼굴기름기가 다른날보다 확실히 줄어들어, 사춘기 내 얼굴 위 여드름을 줄이는데 더나할나위 없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향도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리 시크하지만 질리지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래, 그러고보니 이 브랜드 자체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라 했지. 그래서 그런가, 순하디 순하되 물에 탄 듯 맹탕거리지 않는다.

나는 요즘 돈이 없다. 그리고 이제 나이도 한판이라 전보다 피부에 신경을 덜쓴다. 클렌징폼도 까짓거 헌혈하고받은 여행세트에서 덜어쓴다. 팩도 그냥 어머니가 샘플로 얻어오신 것을 아무거나 쓰고, 수분크림도 바르지않는다.
옷은 집에 돌아다니는 아디다스 츄리닝 세트고, 한달 두번씩 가던 헤어샵도 이제 5~6주에 한번 가서 커트만 한다.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을 멤버십으로 할인받아서 떼우고 커피는 회사 커피머신에서 타마신다. 술도 칭타오와 아사히만 고집하다가 카스로 바꾸고, 안주는 치킨 대신 감자칩으로 저렴하게 대신한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없어도 이 제품을 쓴다. 돈이 없어도 수염이 있으면 안되니까. 덜 먹고 덜 쓰고 덜 사도 수염은 계속 자란다. 면도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아낄 수 없는 내 마지막 자존심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면도를 깔끔히 마무리 해주는 이 제품만은 포기할 수 없다.

개당 25,000원이라는 금액은 국내 로드샵 제품 2개를 살 수 있지만 나는 쳐다도 보지않는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나의 면도를 책임져준 제품에 대한 충성도이자, 다른 제품을 사용한다한들 나는 어김없이 페이스프로텍터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고집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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