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단추
눈길을 피하기 위해
고개 숙여
단추를 만져 본다
정말 단추보다
더 작아지고 싶은 얼굴
따가운 순간이 있다
단추 속으로 숨고 싶어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던 단추가
금빛 얼굴은 감출 수 없다고
실밥 풀린
얼굴로 멋쩍게 웃는다
신달자, 아무도 없다
흐린 낙서 몇 줄도 완전 지우고
새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는
텅 빈
한 장의 종이
방에서 마루에서 거리에서 극장에서 카페에서
기차역에서 공항에서 바다, 산, 강, 밥집에서
나 혼자 있다
혼자라는 말도 지우고
나도 지운다
깔끔하고
개운하다
배한봉, 각인
이름부터 아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장수풍뎅이, 각시붕어, 닭의장풀꽃
사는 법 알면 사랑하게 되는 줄 알았다
아이는 한 송이 풀꽃을 보고
갈길 잊고 앉아 예쁘네 너무 예뻐, 연발한다
이름 몰라도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
어루만지지도 못하고 눈빛만 빛내고 있다
사랑은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임을
내게 가르쳐 주고 있다
헛것만 가득한 내게 봄을 열어주고 있다
깨닫느니, 느낌도 없이 이름부터 외우는 것은
아니다, 사랑 아니다
생각보다 먼저 마음이 가 닿는 사랑
놀람과 신비와 경이가 나를 막막하게 하는 사랑
아름다움에 빠져 온몸이 아프고
너를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때
사랑은 웅숭 깊어지는 것이다
이름도 사랑 속에 또렷이 새겨지는 것이다
김종철, 고백성사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정두리, 먼지의 자리
먼지는 어디에건
주저앉으려고 든다
살금살금
가볍게
무엇보다 사람들의
무관심 위에 앉기를 좋아한다
아무도 몰래
숨어 만든 자리
그 자리 엄청 넓어서
나중엔 먼지가 먼저 놀라
풀석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