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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원, 혼잣말
분명 제가 뱉은 말이지만
입술 한 번 뻥긋한 적 없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꽃망울이 열리듯
겹겹 홀쳐맨 사향주머니가 흘리는 향기 같은 말
상륙전까지는 무섭도록 조용하지만
찬란한 끝장을 갈망하는 태풍의 눈 같은 것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제 귀에 조차 안 들리는 말이다
소라껍질 속에 갇힌 파도소리처럼
물기란 물기 다 증발해 버린 오래 묵은 속울음 같은 말
제 몸속을 뜨겁게 달리고 있지만
스스로 발소리를 숨기는 피돌기 같은 것
유안진, 벌초, 하지 말 걸
떼풀 사이사이
패랭이 개밥풀 도깨비바늘들
방아깨비 풀여치 귀뚜라미 찌르레기 소리도
그치지 않았는데
살과 뼈 녹여 키우셨을 텐데
다 쫓아버렸구나
어머니 혼자
적적하시겠구나
박소유, 자줏빛 자(紫)
이 빛을 보면 불안하다
몸 아픈 곳을 짚어내는 빛이며
깊게 스며들어 뼛속까지 아린 자주감자고
혓바닥까지 늘어진 자목련 꽃잎이며
피 터지게 싸우고 난 수탉의 볏이다
구구절절, 피 멍 든 생들은
처음부터 그런 빛 그런 몸을 지녔으니
더 아플 것 없겠다 쉽게 말하지 마라
세상이 온통 자줏빛이다
누구는 상처를 꽃으로 읽지만
나는 벌써 꽃이 상처로 보인다
강은교, 아무도 몰래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을 만지고 싶네
빛을 향하여 오르는 따뜻한 그 상승의 감촉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의 문을 열어보고 싶네
문안에 피어 있을 붉은 볼 파르르 떠는 파초의 떨림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에 별똥별 하나 던져 넣고 싶네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추락의 별똥별을, 추락의 상승이라든가 추락의 불멸을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떨리는 추락의 눈썹에 빗방울 하나 매달고 싶네
그 빗방울 스러질 무렵이면
돌아오는 귀이고 싶네
천상병, 장마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 밤의 골목어귀를
온 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