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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야트막한 사랑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언덕 위의 사랑 아니라
태산준령 고매한 사랑 아니라
갸우듬한 어깨 서로의 키를 재며
경계도 없이 이웃하며 사는 사람들
웃음으로 넉넉한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의 사랑 아니라
개운하게 쏟아지는 장대비 사랑 아니라
야트막한 산등성이
여린 풀잎을 적시며 내리는 이슬비
온 마음을 휘감되 아무것도 휘감은 적 없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이제 마를대로 마른 뼈
그 옆에 갸우뚱 고개를 들고 선 참나리
꿀 좀 핥을까 기웃대는 일벌
한오큼 얻은 꿀로 얼굴 한번 훔치고
하늘로 날아가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가슴이 뛸 만큼 다 뛰어서
짱뚱어 한 마리 등허리도 넘기 힘들어
개펄로 에돌아
서해 긴 포구를 잦아드는 밀물
마침내 한 바다를 이루는
김영탁, 번개
한 밤중, 창문을 두드리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아니다 후레쉬 비추며
자꾸 나오라고 접선 신호를 보낸다
나가보면 아무도 없는데
뒤돌아서는 뒤통수를 찰나로
때리고 지나가는 첫사랑
문정희, 초여름 숲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엔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 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서
서로를 쑤실 가시도 없이
너무 멀어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 길을 만드는 일도 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푸른 하늘처럼
그대와 나 사이
저 초여름 숲처럼
푸른 강 하나 흐르게 하고
기대려 하지 말고, 추워하지 말고
서로를 그윽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문인수, 오징어
억누르고 누른 것이 마른 오징어다
핏기 싹 가신 것이 마른 오징어다
냅다, 불 위에 눕는 것이 마른 오징어다
몸을 비트는
바닥을 짚고 이는 힘
총궐기다
하다못해 욕설이다
잘게 씹어 삼키며
무수한 가닥으로 너를 찢어발기지만
너는, 시간의 질긴 근육이었다
제 모든 형상기억 속으로
그는, 그의 푸른 바다로 갔다
문효치, 공산성의 들꽃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거추장스런 이름에 갇히기 보다는
그냥 이렇게
맑은 바람 속에 잠시 머물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즐거움
두꺼운 이름에 눌려
정말 내 모습이 일그러지기보다는
하늘의 한 모서리를
조금 차지하고 서 있다가
흙으로 바스러져
내가 섰던 그 자리
다시 하늘이 채워지면
거기 한 모금의 향기로 날아다닐 테니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한 송이 ‘자유’로 서 있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