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맨발
맨발의 티베트 여자가 카펫을 짜고 있다
붉은 등이 강물을 물들인다
구릉 아래, 접시만한 물고기가 성체처럼 빛난다
어디서 왔느냐
울컥, 치밀어 오르는
삶의 비린내
황하 사람들은 황하를 문자로 새기지 않는다
거기, 오래 전부터
뜨거운 사람을 천에 새기는 여인이 있었고
동백이 한 그루
서 있었을 뿐이다
신달자, 종이 이불
신열이 아직은 산 증거라는 듯
시멘트 바닥이 그를 떠받쳐 든 채
오한에 떨고 있는 풍경 본다
사실은 끙끙 앓는 바닥을 덮어 주고 있는
누더기 육신
겨울 지하 통로에 누워
종이 한 장으로 세상의 바람을 가리고 있는
종이 한 장으로 지나온 세월을 덮고 있는
관심사에 멀어진 의문의 흐릿한 기호 하나
오래전에 난청이 되어 버렸지만, 그러나
지하의 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독한 바람과는 통하는지
그 소통 안에는 언 귀를 잡아당기며 쩔쩔 흔드는 손이 있는지
종이 한 장의 보온 기억을 되살리느라 발끝을 오므린다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영혼이 가는 곳으로 느리게 머리를 돌리고 있는 저 사람
죽은 듯 죽지 않은 입을 열었다 오므리고 있다
종이 한 장으로 깊고 깊은 겨울의 중심을 건너는 저 사람
김완하, 강둑에 서면
물 돌아가는 강둑에 서 있는
소나무가 왜 말이 없는지 나는 알지
그가 꿈꾸는 것은 하늘
줄기로는 머리 위 하늘을 쓸고
뿌리로는 강물 속 하늘을 품어
그렇게 두 개의 하늘 그리며 일생을 살아도
끝내 하늘에 닿을 수 없는 것을
머리 위 하늘과 강물 속 하늘이 너무 멀어
하늘 속 별들 너무 많고
강물 속 그리움 너무 깊어
끝끝내 그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장인성, 봄비
네가 오는구나
손에 든 초록 보따리
그게 전부 가난이라해도
반길 수밖에 없는
허기진 새벽
누이야
네 들고 온 가난을 풀어보아라
무슨 풀씨이든
이 나라 들판에 뿌려놓으면
빈 곳이야 넉넉히 가리지 않겠느냐
전성미, 오지 않는 기차
사루비아꽃 아직 붉고
길은 사방으로 뻗어 있는데
맨몸으로 드러누운 철길 침묵만 지킨다
이름을 잃어버린 역, 시간은 멈추고
삐걱대는 의자에 그리움 앉아 있다
홍초 꽃빛 적막함에 젖어있고
기다리는 나
노을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