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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어떤 기도
기도하는 갈매기를 보았는가
허공을 선회하던 갈매기 한 떼가
돌연 뭍으로 내리더니
해안 사구에 정연히 자리를 잡고
해를 바래 조용히 명상에 든다
수평선 너머 한 방향을 일제히 응시하는
그 눈빛들이 경건하다
머리에는 한결같이 흰 깃의 히잡을 썼다
모스크 광장에 도열해서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무슬림들 같다
잠시 전 고깃배에서 활어를 약탈하고
어시장에서 생선 찌꺼기를 훔쳐 먹고
날쌔게 잠수해서 어린 물고기를 살육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갈매기도 험난한 바다에선
삶이 고해임을 아는 까닭에
이처럼 신에게 고백할 줄을 아는 것이다
박제영, 그때는 미처 몰랐제
젊었응께 어렸응께
정말로 그때는 미처 몰랐제
서른 둘에 이장이 되어서 내가 처음 한 게
나무를 벤기라
마을 어귀 삼백 년 된 늙은 느티나무를 베어낸기라
길을 내야했거든
봐라 저 휑한 길을, 저 흉한 걸 내가 만든기라
어르신들 반대를 무릅쓰고
공약을 지킨기 그땐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었는데
젊었응께 어렸응께
저 신작로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날 줄 몰랐제
이리 될 줄은 이리 텅 빌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제
내가 사람을 벤기라
나무를 벤기 아니라 사람들을 벤 기라
신달자, 뺨
누가
내게
쉬익
뺨을 갈렸다
연타의
굴욕이 쩡 하늘을 가르며 빛났다
벌겋게 달아오른
팽팽한 우주 표면에 윙 울리며 부어오르는 심장을
직격탄으로 다시 갈겼다
종이가 두 팔로
내 생의 붉은 자국들을 두루두루 다 받아 안았다
정윤천, 오래, 오래
흰빛, 보자기에라도
싸오신 것처럼이나
사알짝 내밀어
잡아주었던 것
손길
하나
그런 시간의
곁에인 듯
오래
오래
멈추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이선욱, 단단한 구조
오래된 건물이었다
어떤 피로의 형상이었다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지붕 가득히 앉아 있었다
무언가 이따금씩 술렁이는 것들이
비둘기였는지 지붕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보이지 않는 물결이 고개를 들 때마다
오래된 건물은 분명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깨진 창문들이 꿈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덧 비둘기들이 아지트로 자리한 그 건물이
어느 이름 모를 종교의 예배당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또한
주로 아픈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찾았으므로
이른바 안식의 집으로도 불렸다는 사실
그 후 심한 풍문을 앓으며 방치되기까지
안개 같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본 것은
그 사이 눈에 띄게 기울어진 건물의 축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깨진 창문들이 점점 꿈의 바깥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 바깥은 낯설게 변한 풍경이었다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고
그것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건물의 지붕이었다
거기까지였다
꿈은 무너지지 않은 채 각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그 모든 것들을 소리 없이 지탱해온
기둥과 기둥 사이
부서진 벽과 벽 사이의 필사적인 공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