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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이런 이유
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부푸는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
이 돈을 그에게 전해 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이 돈을 잘 전해 주시길
김선진, 다리
가장 건너기 힘든 건
이 산과 저 산을 잇는
구름다리도 아니요
이쪽 강과 저쪽 강을 접붙이는
나룻배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천근 같은 마음의 다리
맹문재, 숲
흔들릴 때마다 마을이 가렸다 보인다
산등성이 닫혔다 열린다
손짓이랄 수도 춤이랄 수도 있는 몸짓
있던 자리는 여백이지만 있는 자리는 마냥 푸르다
뿌리마저 흔들려 엉성한 까치집도 기왓장처럼 단단하다
바위를 흔드는 바람에도 부풀어오르지 않고
낙엽 번지는 소리 조용히 품는다
오세영, 파도는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스러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아무 미련도 없이
산산히 무너져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후가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흰 포말을 내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를 위해 소중히 지켜온
자신이 지닌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갖다 바치는
그 최선이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고고하게 외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었던 한마디 말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는 그 한 순간이 좋은 것이다
아,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거친 대양을 넘어서, 사나운 해협을 넘어서
드디어
해안에 도달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스러져 수평으로 돌아가는
그 한 생이 좋은 것이다
송진환, 강아지풀을 보다가
가로수 밑둥 강아지풀들
무더기로 흔들린다
그래, 저것들
강아지들이라 생각해보자
자꾸 내게로 달려온다
혓바닥으로 손등 핥는 게 미치도록 간지럽다
간지러움 다시 그들에게로 전해져 뛰고 난리다
강아지풀이 강아지가 될 수 있다는 건
거짓이 아니다
절실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
속살까지 다 드러낸다
분명,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