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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나팔꽃
너는 이 꽃 속에 있지만 나는 잊지 않다
너는 네 밖의 사람들을 위해 목을 매달았지만
나는 매달 수 없다 아니다 나는 달 수 있지만
네가 매단 적 없다
이런 질문을 앞에 두었다가 뒤에 두었다가
어느 감옥에 이른다 감옥 창문을 넘어다본다
그러다가 불행한 화공의 이야기 속에 시든다
누가
그 화공의 붓을 들고 지금
인류 밖으로 나가고 있다
구재기, 흔들의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으면
세상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이
이토록 편안할 줄이야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그 물결이
출렁이면서 바다가 살아있다는 것이
보인다 도무지 마음 가지 않은 것들도
한 번쯤 흔들리고 나면 정이 붙는다
흔들릴 때마다 하늘이 내려와 앉고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이 치솟다가
물속에 잠기기도 한다 한 여름
무더위가 씻은 듯이 사라질 무렵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안심이 된다
배 한 척이 수평선 위에 뜨기까지
얼마동안이나 육지를 밀어내며
흔들려 나아갔을까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세상에서 혼자서만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나를 본다
조정권, 길 위의 행복
마음을 저축하면
이자가 붙나
마음을 투자하면 두 배가 되나
아니다 마음을 헌금하는 거다
꽃에다 별에다 새에다 샘물에다 이슬방울에다
피라미에다
길에다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면서
길에다 헌금하는 거다
고진하, 천둥소리
저 잔혹한 섬광 뒤의 굉음을 받아 적을 수 없다
하늘에 긋는 저 시퍼런 성호도 받아 적을 수 없다
오늘밤은, 내 시도 정전(停電)이다
천양희, 웃는 울음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어느 방구석에서든 울고 싶은데도
울 곳이 없어
물 틀어놓고 물처럼 울던 때
물을 헤치고 물결처럼 흘러간 울음소리
물소리만 내도 흐느낄 울음은 유일한 나의 방패
아직도 누가 평행선에 서 있다면
서로 실컷 울지 못한 탓이다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어느 방구석에든 울고 싶을 때는
소리 없이 우는 것 말고
몸에 들어왔다 나가지 않는 울음 말고
웃는 듯 우는 울음 말고
저녁 어스름 같은 긴 울음
폭포처럼 쏟아지는 울음
울음 속으로 도망가고 싶은 울음
집 구석 어디에서든
울 곳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