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학교에서 6.25에 대해 배울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25일이 일요일이라 24일부터 휴가를 나가서 군인이 없을때 전쟁이 났다
머 이런 얘기인데요
저희 본적이 구리시 갈매 ~ 사노 인터체인지 부근이라 (참고로 저기 엄청 시골입니다. 지금은 길이 뚫렸지만) 아버지 8세쯤에 6.25가 발발 했습니다.
당시 어른들한테들은얘기로는 육사에서 매주 토요일만 되면 저희 동네로와서 칼빈을 동네 창고에 숨기고 퇴계원으로 놀러 다녔다고 하네요
물론 총을 방치한건 아니고, 막내 2명정도가 돌아가면서 지켯다고 하구요
24일날 그정보를 알고 왔을거라 보지만,북한 군인들이 와서 무기 뺏고 육사생도들부터 잡아서 죽였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당시는 폰이 있던것도 아니고 도망치는 육사생도들 잡아서 농민으로 위장시켜서 숨겨주긴 했는데 ... 바지 끄댕이 땡겨보고 피부 하야면 다 잡아죽였답니다.
그리고 구리시는 당시 미군과 북한군 사이의 경계 지역이라 시청이 불타서 땅문서도 다 없어지고
어느날은 미군이 점령하고 어느날은 소련군이 와잇고 그랬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렸을대 소련군 팔베고 주무신 기억있으시다고..
그와중에 민간인 청 장년분들이 많이 돌아가셧습니다. 북한에서 사람 모으라고 젊은 사람 시켜서 동네사람 모으면 그걸 미군이 보고, 미군이 들어왔을때는 그 사람 모은사람을 잡아내서 빨갱이라고 잡아갔는데 돌아오지 않은 분이 많이 계십니다. (저희 큰아버지도 생사불명)
그뒤로 할아버지 아버님위 형님들 나이 분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저희 할머니가 동네 부모 없는 분들 많이 챙겨주셧다고 하시구요
당시 할머님 분들 교육을 받고 자란분들도 아니고 글 몰라서 땅 못찾은 분들 많습니다.
토지 돌려주는거 할때 신청하면 되는데, 신청 안하고 있으니 지역 공무원이 자기이름 등록해서 팔아먹고 미국으로 날른 사람이 있거든요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그렇게 지역주민이 뺏긴땅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소송에서 찾아온사람도 있지만요)
아. 그러고보니.. 저 어렸을때 삐라 주워다 학교같다 주면 공책주고 그랬는데 저희 시골가면 한푸대씩 바닥에 돌아다녔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