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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일, 무인도
거기 계세요, 제가 갈게요
당신은 바다에서 가장 높은 산
시장에서 제법 쓸쓸해 보이는 나무들도 샀구요
당신과 어울릴 만한 음악도 골랐어요
붉은 꽃으로 치장한 통통배 타고 가장 높이 계신 당신께 오를 거예요
깃발도 달고, 꽹과리도 두드리며
멀리 계신 당신 쉽게 손 흔들 수 있도록
시끌벅적 밀물 타고 갈 거예요
당신의 연안(沿岸)은 모두의 피난처
안달 난 새들은 같은 방향의 화살표로 날아들겠지요
당신 치맛자락엔 검으나 부드러운 몽돌을 내려놓을 거구요
차고 단 샘물도 넣어 드릴게요
가만 가만 거기에만 계세요
교회 종 떼어 당신 목에 걸어 둘래요
꿈밖으로 떠밀려 가도 알아챌 수 있도록
색색의 부표로 당신을 휘감겠어요
거기 계세요
태양과 바람의 경계에서 가장 상처 깊은 뿌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안(彼岸)의 장르인
당신
정윤천, 너라고 쓴다
솜꽃인 양 날아와 가슴엔 듯 내려앉기까지의
아득했을 거리를 너라고 부른다
기러기 한 떼를 다 날려보낸 뒤에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저처럼의 하늘을 너라고 여긴다
그날부턴 당신의 등뒤로 바라보이던 한참의 배후를
너라고 느낀다
더는 기다리는 일을 견딜 수 없어서, 내가 먼저 나서고야 만
이 아침의 먼 길을 너라고 한다
직지사가 바라보이던 담장 앞까지 왔다가, 그 앞에서
돌아선 어느 하룻날의 사연을 너라고 믿는다
생이 한 번쯤은 더이상 직진할 수 없는 모퉁이를 도는 동안
네가 있는 시간 속으로만 내가 있어도 되는
마음의 이런 순간을 너라고 이름 붙여주고 나면
불현듯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라곤 사라져버려선
사방에서 사방으로 눈이라도 멀 것만 같은
이 저녁의 황홀을 너라고 쓰기로 한다
이재무, 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
일요일 밤 교복을 다린다
아들이 살아갈 일주일 분의 주름
만들며 새삼 생각한다
다림질이 내 가난한 사랑이라는 것을
어제의 주름이 죽고 새로운 주름이 태어난다
아하, 주름 속에 생활의 부활이 들어있구나
아들은 내가 다려준 주름 지우며
불량하게 살아가리라
주름은 지워지기위해 태어나는 것
주름을 만들며 나를 지운다
정공량, 희망에게
아득함에 지쳐 노래 부르고 싶을 때
너를 만나리라
사랑하다 지쳐 쓰러져 울 때도
너를 만나리라
멀리서 그러나 더욱 가까운 곳에서
물리칠 수 없는 고통과 이웃할 때
내 설움을 비에 적시고 싶을 때
그 때 너를 만나리라
만나서 네가 건네는 한 마디 말에
나는 다시 일어서서 내일로 달려가리라
지친 내 몸, 내 마음 세우며
바람처럼 흘러 흘러서 가리라
이충희, 새치
귀 밑에 돋은 새치를
족집게로 뽑다 객적게 웃었다
빳빳하게 곤두선 새치 몇 올을
야멸차게 뽑아내고
앞머리를 쓸어올리니
아뿔싸, 드문드문 박힌 흰 머리카락
새치가 아니고 세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