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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치는 '인간'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게시물ID : panic_86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나틱프릭
추천 : 19
조회수 : 4910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2/09 09: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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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책머리에-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본 일이 있습니까?
어떤 특수한 도구를 사용하면 특정 사람의 마음속 세계 즉 정신상태를 시각화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각화된 정신상태를 '룸'이라고 명명하였고
이 기술을 상용화하여 심리 치료사들에게 배포할 예정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하기에 앞서 본인을 포함한 동료들과 
스스로 실험에 참가한 100명의 인원들로 실험하여 관찰한 결과
우리는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내용이니 마음 편하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1. 룸의 분위기

-룸의 온도는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
말 그대로 활발할수록 점점 따뜻해지고 소심할 수록 점점 차가워지는 것이다.
학생인 B군이 생각나는군, 친구도 없고 매일 집과 피시방을 드나들던 B.
그 친구의 룸은 고드름과 성에가 낄 정도로 정말이지 너무도 추웠다. 
오죽했으면 룸 접속을 해제한 뒤 구스다운을 입고 다시 접속할 정도였으니.
이와 반대로 헤어샵에서 일하는 J양은 너무나도 더웠다.
이 둘은 온도에서 극과 극의 차이를 보였다.

-룸의 밝기는 그 사람의 천성을 이야기한다.
성선설이나 성악설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거나 악하거나,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
다행히도 우리가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100명 중 98명은 아주 밝은 룸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둘 중 한 명은 사물 정도는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고
마지막 한 명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빛이 없이는 도저히 룸의 관찰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연쇄 살인범으로 복역중인 K였다.

-룸의 모습은 그 사람이 논리적인지 감성적인지 이야기한다.
실험에 참가한 인원 중 한 명은 룸 접속 장치의 개발자인 P였다.
P의 룸은 모든 것이 오와 열이 갖추어진, 정리정돈된 곳이었다.
다소 위화감이 들 정도로 정리가 잘 된 P의 룸은 현실의 그와 별 차이가 없었다.
반대로 감성적인 사람의 룸은 화려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룸이다.
헤어디자이너 R과 화가 K의 룸을 살펴보라.



 그 뒤에도 책은 지식의 양, 사진들은 추억, 룸에 사는 인물들은 존경심이나 경외, 연심이 투영되었다는 내용과
그 룸 안에 있는 본인의 상태로도 본성을 잘 알 수 있다는 내용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룸 접속 장치의 개발자가 쓴 책을 살펴보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책을 쓴 개발자이자 그 강의실의 교수였던 P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신 '룸'중에 제일 인상깊었던 것이 무엇인가요?"
 "글쎄요, 나쁜 질문은 아니네요. 이렇게 강의 시간을 날려드시려고?"

군중은 하하 웃었다. 질문을 한 학생은 멋쩍은 듯 웃으며 다시 말했다.

 "들켰으니 대놓고 여쭤보겠습니다."

군중과 교수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교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방의 밝기 파트에서 나왔던 그 연쇄살인범이 아닐까 합니다."

교수는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정말 잠시 침묵했다.



 "다음 실험체, 번호 0012, 입장해주십시오."

음의 고저가 똑같은 딱딱한 방송이 들리고 대기실에 앉아있던 K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수번호 M981A, 실험체 연번 12번. 그의 본명이 있음에도 그는 그렇게 불렸다.
그는 이틀 만에 열 두 명의 부녀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욕보인 후 
유기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은, 하지만 집행하지는 않은 그런 존재였다.
다른 실험체들이 그를 벌레보는 눈빛으로 보자 K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어서 오십시오, 12번님! 대단한 일을 하셨더라구요!"

가까운 미래에 룸에 관해 강단에서 강연할 개발자 P는 K를 반갑게 맞이했다.
K에게는 아마 처음 받아보는 환대가 아닐까. 얼떨떨한 표정의 그에게 P는 소시지를 건넸다.

 "드세요. 저희 집 고양이가 아끼는 건데 몰래 가져왔습니다."
 "허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잠시 면접 형식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K가 무슨 종이에 사인을 하였다.

 "이로써 동의하신 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묻거나, 저를 살해하시면 안 됩니다."
 "농담도... 참..."
 "하핫, 그러게요, 입이 방정이지. 따라오시죠."

P를 따라들어간 방에는 관짝 두 개가 연결된 형상을 가진 물체가 있었다.
마음을 편히 먹고 자리에 누운 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졌다.

P는 눈을 떴다고 생각했지만 앞에는 칠흑같은 어둠 뿐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뜬 게 맞나 고민했지만 이내 그는 진짜로 눈을 떴고 
K의 룸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놀라웠다.

 "아이구 세상에, 이렇게 어두운 룸은 또 처음보네. 한 치 앞도 안보이니 원."

그는 주머니를 뒤져 작은 헤드 랜턴을 찾아냈다.
랜턴을 머리에 쓴 그는 불을 켰다. 걷히지 않을 것만 같던 어둠이 걷히고
룸의 모습이 들어왔다. 룸은 마치 미로와도 같았다.
미로의 벽을 이룬 줄 알았던 벽들은 놀랍게도 책장이었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도서관에서 본 책들보다 훨씬 더 많겠군."

평균 신장에 속하는 P의 키를 세 배는 되는 책장의 높이, 거기에 빼곡하게 박힌 책들
그리고 그런 책장들이 얽혀서 미로처럼 되어버린 룸. K는 천재였다.
물론 P가 확인한 책들의 내용은 중세시대의 고문이나 살인 사건, 추리소설 따위가 거지반이었다.
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접속 해제 코드를 책장 하나하나에 써가면서 미로에 들어갔다.
코드를 닫는 것만 남김으로 유사시에 빠른 탈출을 도모하기 위함일 것이었다.

K의 룸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춥다기 보다도 서늘하고 오싹한 기운이 쉴 새 없이 흘렀고 책장은 끝도 없이 이어졌으며
다른 사람들의 룸에서 보였던 사진이나 장난감, 사람 등 평범한 물건은 없었다.
갈퀴, 작살 따위의 흉물들만 즐비할 뿐이었다.



 "룸에 있는 도구들은 그의 관심사를 나타냅니다. 오로지 살인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흥미롭네요."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K는 사이코패스라는 거죠. 죽을뻔 했습니다. 갑자기 뒤를 치려고 하길래 제가...!"

P는 약간의 과장을 섞어 큰 몸짓을 해대며 말하다가 멋쩍은 듯 멈추었다.
군중은 탄성을 질렀다. 모두가 자신 혹은 타인의 룸을 눈으로 보고싶어하는 눈치였다. 
P는 이 분위기를 감지하고 프로젝트를 끄면서 덧붙였다.

 "사실 남의 마음 속을 본다는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P는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돼요. 중립적이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누군가의 룸에 맞추기 위해 비위를 맞추로 아부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룸이 비어버리게 된답니다. 자아가 없어지고 껍데기만 된다는 거죠."
 "......"
 "글쎄요, 요새 누가 안그렇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P가 짐을 챙기며 덧붙였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이 장치는 '약간의' 연구를 더 거쳐야 할 겁니다. 출시는 무기한 연기되었고요."

눈만 끔뻑이는 학생들의 눈을 본 그는 강단을 걸어나가다가 뭔가를 잊었다는 듯 뒤로 돌아보았다. 

 "아, 그런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언급은 안 드리겠습니다만... 그렇게 되기 싫으시면 빨리 종교를 버리거나 정치에서 손을 떼세요."



P는 당황했었다. 
지금까지 백 사람들의 룸을 모두 들어갔지만, 이렇다할 특징이 있는 룸을 가진 사람들은 단 아홉 명 뿐이었다. 
나머지 구십 일 명의 룸은 텅텅 비어있었다.
실험은 실패였다. 정확히는 장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험 대상을 잘못 고른 탓이었다.

P는 고민끝에 그 아홉 명에게서 나온 결론들을 종합하여 룸의 특징들을 정리해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한 줄을 적는 것을 끝으로 책을 덮었다.

P는 룸 접속 장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활활 타오르는 연구소 지하실을 방호 셔터가 내려와 막았다.
안에서 몇 번의 폭발음이 들렸지만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굳게 잠긴 연구소를 뒤로하고 P는 또 다른 일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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