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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49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꿈결★
추천 : 15
조회수 : 41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9/12/29 03:00:11
'남편만 없으면... 남편만 없으면...'
한희는 혼자 컵라면을 끓여먹고 구석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채 잠든 남편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희는 짙은 화장에 과장적으로 부풀린 머리, 그리고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바보같이 잠들어있는 남편을 경멸의 눈길로 내려보며 팬티스타킹을 벗었다.
' 이걸로 그냥....!!! '
한희는 무심코 스타킹을 들어 두 개를 교차되게 꽈악 졸라매는 시늉을 했다.
그 때였다.
' 으음으음 '
한희의 남편은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아내를 보며 헤벌쭉 웃었다.
" 당신 왔어 ? "
남편은 밍기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 좀 더 자지 왜 벌써 일어나요 ? "
한희는 스타킹을 들었던 손을 재빨리 거두며 쏴 붙이듯 말했다.
" 아, 당신이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내가 어떻게 혼자 두다리 쭉 뻗고 자? 힘들었지 ?"
남편은 맨날 입는 자줏빛 추리닝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불룩 튀어나온 배를 긁적이며 말했다.
심한 근시인 남편이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고 있는 사이 한희는 한심하다는 듯이 트레이닝 바지로 옷을 갈아입고 남편이 어질러놓은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널려놓은 과자봉지와 옷뭉치를 들춰내자 바퀴벌레가 두 마리나 튀어나오더니 부리나케 벽틈으로 사라졌다.
빗지않아 지저분한 남편의 머리는 드문드문 새치가 보였다.
' 으이그 내 팔자야... '
남편은 이제 마흔여덟, 한희는 스물 여섯이었다.
집안끼리의 일방적인 합의하에 행한 결혼식이었다.
아무리 여기가 서울이 아닌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나이차이가 스물 두 살이나 나는 남편하고 평생을 살 붙이고 잘 생각을 하니 넌덜머리가 났다.
한희는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발악을 했다.
그 당시 한희의 아버지는 빚 보증을 잘 못쓰는 바람에 콩팥이라도 하나 떼어서 팔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고 결혼을 전제로 거액의 돈이 오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왕 결혼한 남자, 잘 살아보겠다고 한희는 노력했지만 늙어빠진 남편은 도무지 매력이라곤 찾을 수가 없는 쓸데없는 인간이었다.
가방끈은 짧아 배운 건 없지, 그렇다고 무슨 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아니지, 무슨 일이든 공짜로 먹으려 했다.
"하다못해, 밭에 나가서 농사일이라도 좀 거들든지요..!!"
한희가 광주리와 호미를 들고 짜증스럽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배를 깔고 누워있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으나 남편은 그저 헤헤 웃기만 하고 뭔가를 할 생각을 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를 절망하게 한 사실은 말짱하게만 보였던 남편이 사실은 남자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불구자라는 것을 알았던 때였다.
한희는 한숨을 푹푹 쉬며 수건을 들고 나가 밖에 나가서 씻고 혼자 밥상을 차려 밥을 먹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부자리를 깔고 남편을 눕고 저도 그 옆에 누웠다.
남편은 등을 진 채 또 다시 깊게 잠이 든 듯 숨소리가 깊었다.
한희는 똑바로 누워 재훈과의 만남을 생각하며 저도 몰래 미소를 지었다.
방금도 재훈과 만나서 데이트를 즐기고 오는 길이었다.
재훈과는 읍내의 캬바레에서 만난 사이였다.
말쑥하게 빗어넘긴 머리하며, 깔끔한 정장에 럭셔리하고 연예인 뺨치는 이목구비까지 남편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 남자.
나이는 한희보다 고작 두 살 더 많을 뿐이었다.
한희는 내일은 또 어떤 옷을 입고 재훈을 보러 갈것인지 열심히 구상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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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네 남편은 아직도 네가 벌어다 주는 돈이 춤강사로 일해서 벌어주는 돈이라고 생각하는거니 ? "
캬바레를 다니면서 알게 된 정아는 깔깔깔 웃었다.
" 그럼, 그 미련곰탱이같은게 무슨 재주로 내가 그 사람하고 만나는걸 아니? 그 인간, 아마 내가 재훈씨를 앞에다 세워놓고 있어도 눈치 못 챌 인간이야."
정아는 들고 있던 담배를 비벼끄며 말했다.
" 얘, 이혼해. 너 왜 그러고 사니 ? 그런 얼뜨기같은 거 떼어놓는 건 시간문제야. 이혼하고 넌 재훈씨를 떳떳하게 만나는 거야. "
" 이... 이혼 ? "
한희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정아에게 너무도 태연하게 튀어나오자 당황했다.
" 왜 ? 이혼이 뭐 대수니 ? 요즘에 이혼한건 결혼할 때 흉도 아니다."
"...그... 그래도... 그 사람은... 나 없으면 못 살텐데... "
"결혼도 돈 때문에 한거라며. 언제까지 그런 남자구실도 못하는 사람한테 얽매여 살거니? 지겹지도 않아 ?? 평생 그 인간 뒤치닥거리나 하면서 늙을거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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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참 재미있으시네요, 재훈씨는... "
읍내를 벗어나 좀 더 번화한 서울 부근의 어느 레스토랑에 앉아있는 한희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뭐, 이정도야... 다음에는 제가 한희씨께 마술을 보여드리죠. "
"마술요 ?"
"휴지를 장미꽃으로 바꾸는 그런 마술말입니다.."
"어머, 정말요 ?"
한희는 두 손을 맞잡으며 좋아했다.
"... 저 한희씨... "
분위기가 가라앉자 재훈은 말을 건넸다.
" 왜요 ? "
" 한희씨를 보면 정말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 제가요 ? "
" 한희씨는 이렇게 젋고 아름다우시고 애교도 넘치시는데 왜 그런 남자랑 사는지...이해가 안가는군요..."
한희는 낯뜨겁다는 듯이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 평생 그 남자 뒤치닥거리나 하면서 이 고운 손을 밭이나 일구느라고 나무껍질을 만들어버릴겁니까. 그 남자랑 이혼하세요, 당장이라도. "
".............."
사실 재훈은 정말 욕심나는 사람이었다.
그가 제비든 뭐든 상관이 없었다.
당장은 그를 갖고 싶었고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한희의 심정이었다.
등신같은 남편을 콤플렉스처럼 계속 달고 있다가 그가 떠나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저, 그 사람이랑 이혼 할거예요! 재훈씨.. 기다려줄수 있죠 ?"
한희는 저도 모르게 불쑥 말을 했디.
재훈은 씨익 웃기만 하고 더 말을 하지 않고 와인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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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밀려드는 어둠.
한희는 약간 취한 상태로 바로 집앞에서 재훈의 차를 멈춰세웠다.
" 재훈씨,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
" 저도 이렇게 한희씨같은 미인과 함께 데이트를 하니까 즐거웠습니다. 평생 이렇게 함께 하면 더 좋을텐데... "
" 어머... 그럼 이만 들어가볼게요. "
한희는 급히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 부아앙 '
차가 저 멀리 주황지붕 모퉁이를 돌아 살아질때까지 한희는 계속 재훈의 차만 응시했다.
'재훈씨, 저도 재훈씨같이 젠틀한 분과 평생을 살면 오죽 좋을까요. '
한희는 몸을 돌려 게딱지같이 납작한 집의 쇠문을 열었다.
마당은 어두컴컴했고 안방에는 불도 켜져있지 않았다.
' 인간말종. 아직도 잠이나 자빠져자고 있나 ? '
한희는 높은 힐구두를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지며 마루 위로 올라섰다.
그때였다.
' 빠직 '
발밑에 뭔가가 탁 터지는 소리가 났다.
한희는 화들짝 놀라 얼른 옆 벽을 더듬어 마루 스위치를 켰다.
바퀴벌레였다.
' 헉. '
그것이 어두컴컴한 속을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다가 한희의 발에 희생양이 된 모양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그것의 납작하게 눌린 반질반질한 까만 몸 사이로 정체를 알수 없는 누렇고 하얀 내용물들이 비어져 나와있었다.
" 에잇 더러워 "
한희는 망사스타킹을 재빨리 벗어버렸다.
발밑에 바퀴벌레의 누런 내용물이 묻어있을 것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나서 얼른 마당에 그것을 던져버렸다.
한희는 기분이 몹시 나빠진 상태로 동굴 입구같이 컴컴하고 비좁은 안방문을 열어제꼈다.
" 아직도 자고 있어요 ?"
한희는 앙칼지게 소리치며 맨발로 퉁퉁거리고 들어와 불을 켰다.
오랫동안 갈아주지 않아 남편만큼이나 흐리멍텅한 형광등이 몇번을 껌뻑거리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어둠속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바퀴벌레들이 쏜살같이 구석으로 숨는 것이 보였다.
한희의 집은 바퀴벌레가 많은 편이었다.
어둡지, 습기도 많지, 게다가 원래 집이 조금 따뜻한 편이라 바퀴벌레들이 살만한 환경으로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게으른 남편을 둔 덕에 다른 집보다는 바퀴벌레가 많이 보이는 편이었다.
남편은 눈앞으로 바퀴벌레가 지나가도 귀찮다고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희는 눈에는 순간 남편이 바퀴벌레와 다를 바가 없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먹고, 자고, 남의 음식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밖에는 모르는 - 사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 나쁜 해충.
" 으이그.. 그렇게 맨날 자고 또 잠이 오나요 ? 아니, 집에서 형광등이라도 갈던지... 바퀴벌레 약이라도 놓던지... 집안 꼴이 이게 뭐예요 ?"
한희는 양 손을 허리에 갖다대며 말했다.
" ... 미안해, 여보.. 하려고 했는데 못했네... "
"하려고 하긴 뭘 하려고 해. 내가 보기엔 오늘도 하루종일 방바닥을 뒹굴었는데."
한희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남편과 이혼한 생각을 했다.
남편은 꾸물거리다가 한희의 눈치를 살피며 수건을 들고 밖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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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는 오늘 오랜만에 남편이 좋아하는 삼겹살과 야채등을 사가지고 일찍 집으로 귀가했다.
오늘, 드디어 남편에게 모든 것을 떳떳하게 밝히고 재훈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참이었다.
그래도 불쌍한 인간, 이혼하기 전에 먹을거나 배불리 먹여주고 이혼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나쁜년이 아니야... 누구든 내 남편같이 늙어빠지고 일도 하나도 안하고 여자가 벌어다주는 돈만 착취하는 인간말종하고 살고 싶지는 않을거야..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내가 그런 수모를 겪고 살아 ? 어림없지... '
한희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며 부지런히 집으로 당도했다.
" 여보 ! "
한희는 더 없이 상냥하게 남편을 불렀다.
" 당신이 웬일이야 ? "
식충이같은 남편은 불판위에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고깃덩어리를 내려다보며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 응, 그냥 우리 같이 삼겹살 먹은 지 오래됬잖아, 그래서... "
남편은 고기가 익기도 전에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며 젓가락을 가져다대었다.
' 콱 날고기나 먹고 뒤지든지. '
한희는 눈웃음을 살랑거리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어머, 여보 안 익은 고기 먹으면 해로워.. 내가 익으면 당신 밥그릇에 올려줄게. "
한희는 고기를 뒤집던 기다란 나무 젓가락으로 남편의 쇠젓가락을 막으며 말했다.
" 어 ? 으응으응 "
남편은 마냥 좋아했다.
남편이 탐욕을 부리며 고기를 정신없이 집어먹고 있는 광경을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는 한희.
남편은 밥풀을 튀겨가며 한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 안먹어, 당신 ? "
" 여보. "
한희는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말 머리를 뗐다.
" 왜? 나한테 뭐 할말 있는거야 ?"
심한 근시인 남편의 안경너머 보이는 눈은 실제보다 절반은 작게 보였다.
" 여보, 우리.... 이혼하자 !"
한희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편의 쩝쩝거리는 소리는 멈췄고 침묵속에서 고기만 지글거리고 있었다.
한희는 부르스타를 끄고 어안이 벙벙해져있는 남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 그 편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애.. 우리 둘... 사실 이름만 부부지 서로 신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잖.. "
남편은 다급하게 말허리를 잘랐다.
" 그건안돼!! "
" 왜 안돼는건데 ?"
"여보.. 나 당신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인거 알잖아!! 그런 날 잔인하게 버리겠다고 ?"
"잔인한건 당신이야.. 난 아직 하고싶은 것도 많고 좋은 남자 만나서 살고싶어.. 왜 내가 당신 뒷바라지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거지 ?? "
"아무튼 이혼은 절대 해줄수가 없다! "
남편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나 다른 남자 있어. 당신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그런 괜찮은 남자. 나 그사람이랑 새 출발 하고 싶어, 그러니까... 이혼해줘. "
"나쁜년.. 나몰래 딴 놈을 만나 ? "
남편은 부들부들 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희도 지지않고 몸을 일으켰다.
" 난 당신이 이제 지긋지긋해.. 생떼같은 날 희생시키지 말고 타락하려면 당신이나 타락해. 난 당신같이 살기 싫어. "
" 어디 내가 이혼도장 찍어주나 보자. 난 절대로 너랑 이혼 못한다! "
남편의 눈은 충혈되다 못해 피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한희는 그 노기띤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움찔 놀라 한 발짝 물러섰다.
" 차라리 나랑 같이 죽자, 같이 죽어! "
남편이 억세게 한희의 팔목을 잡았다.
한희역시 지지 않고 우악스럽게 그 손을 떼쳐놓았다.
"미쳤어 ? 내가 왜 죽어 ? 죽으려면 당신 혼자 죽어. 당신같은 인간하곤 이제 일분도 못살겠어.. 정말 질렸다고.. 숨이 막혀! "
한희를 소리지르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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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새없이 휴대폰에 집전화번호가 찍혔지만 한희는 무시했다.
한희가 바로 달려간 곳은 재훈의 집이었다.
" 잘하셨습니다, 한희씨.. 차라리 며칠 집에 들어가보지 마세요. 그 인간, 가관도 아닐겁니다."
재훈은 이 상황을 즐기듯이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했다.
" 저... 그래서 말인데요, 재훈씨 저 이 집에서 며칠만 재워주면 안될까요 ? "
"물론 환영입니다. 하하하하 . "
새벽에 마지 못해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 너... 오늘 안으로 오지 않으면 나 혼자서라도 죽는다. "
' 탁 '
한희는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에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은 닫아버리고 말았다.
" 누...누가 그런 말에 아랑곳이라도 할 줄 알고 ?"
한희는 일부러 당당한 척 하며 혼자 말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도... 삼일이 지나도... 한희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재훈의 집에 머물렀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전화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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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가 집을 나간지 열흘째.
한희는 바로 게딱지같은 집 앞에 멈춰있었다.
그녀의 눈은 병자같이 움푹 들어갔고 온 몸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일명 ' 제비족 ' 이었던 재훈의 그 ' 아름다운 한희씨' 는 비단 자기 뿐만이 아닌 것을 깨달았을 때 다 속았음도 재훈이란 남자와의 핑크빛 인생도 다 꺼졌음을 깨달았다.
' 그래... 이게 내 팔자야... 어떤 집은 남편이 돈도 못벌어다 주면서 때리고 도박이나 하는 집도 있는데 뭐... 그 사람은 그 정돈 아니잖아... '
한희는 되뇌이며 정말 벼랑끝에서 구원받는 심정으로 문을 열었다.
' 끼이이이익 '
녹은 철문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밀렸다.
집안은 냉기가 돌았다.
그래도 전엔 이 정도로 냉기가 돌진 않았다.
집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마당에는 잡풀이 가득했고 늙은 나무는 꼼짝않고 가지를 숙여 한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여...보..."
한희는 낮게 남편을 불러보았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한희는 더듬거리며 마루에 올라 스위치를 켰다.
' 까아아악 '
한희는 불이 켜진 순간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 했다.
마루는 온통 바퀴벌레 투성이었다.
그 바퀴들은 불이 켜지고 사람 기척을 느꼈음에도 아예 도망을 가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이런 몰골로 집으로 되돌아온 한희를 비웃고 있다는 듯이 그녀를 보고도 태연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 크고 뭘 먹었는지 살이 오른 까만 것들은 마루바닥은 물론 벽에까지 진을 치고 있었다.
한희는 쿵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조심스레 발을 뗐다.
' 여보... 그냥 살아있기만 해..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 '
한희는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며 방문 쪽으로 다가갔다.
방문으로 다가갈수록 한희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방문 쪽으로 갈수록 바퀴의 수가 많은 것도 그러했고 무엇보다 온몸에 느껴지는 알수 없는 공포.
뭔가 못볼 것을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어진 방문 틈으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왔다.
한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방 문고리를 비틀었다.
문고리 아래 있었던 커다란 바퀴벌레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한희는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방문고리를 비틀었다.
' 찰칵 '
남편.... 남편은 거기 있었다.
그래, 그럼 소리라도 질러야 했을까 ?
남편이 여기 있었어.. 무사히...
그러나 남편은 이미 바퀴남편이었다.
살아있는 남편이 아니라 바퀴벌레 남편.
남편은 끔찍하게 죽어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낀 형광등에 목을 매고 죽은 남편은 방 가운데 매달려 있었다.
그의 몸은 까맣게 그의 살점을 뜯어먹는 바퀴벌레로 가득했다.
그가 이집 주인이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퀴벌레들은 까맣게 남편의 몸에 뒤덮여있었다.
그의 손 끝에 발 끝에 바퀴벌레들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고 살아있을때처럼 멍청하게 반쯤 벌린 입 사이로도 끔찍한 그 까만 것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남편의 안경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그것의 오른쪽 렌즈는 거미줄같은 방사선 모양으로 깨져있었다.
" 이 빌어먹을 바퀴벌레들이 내 남편을 잡아먹고 있어.. 다 니들이 죽인거지, 니들이! "
한희는 실성한 듯이 갑자기 남편의 시체로 달려들었다.
놀란 바퀴들의 그녀의 어깨로 얼굴로 마구 떨어져댔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썩은내가 진동하는 남편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 여보.. 언제부터 여기 이러고 있었던 거야. 얼른 일어나봐, 얼른 !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그럴게..!! 어흐흑."
그러나 아무리 진정으로 후회한들 이미 늦어버렸다.
반쯤은 바퀴들에게 먹힌 남편의 몸은 반이나 줄어있었다.
" 빌어먹을 바퀴벌레! "
한희는 발밑에서 우왕좌앙하고 있는 뱃속에 맛있게 뜯어먹은 남편의 살점이 들어있을 바퀴들을 보는데로 발로 밟아죽였다.
" 다 죽어, 다!! "
한희는 미친 듯이 울다가 전화기 쪽으로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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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경찰서에는 한창 바쁜 시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차 순경은 투덜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네, ** 경찰서입니다."
-낄낄낄... 여보세요 ? 우리집에 남편이 죽었어요..
" 부인, 거기가 어디죠? 누가 남편을 살해했나요 ? "
- 낄낄.. 바퀴벌레... 바퀴벌레가 내 남편을 죽였어요.. 빨리 와보세요.
" 네? 부인 진정하시고 거기가 어딘지......"
- 뚜두두두두 ...
실성한 여자의 소리가 불안하게 들리더니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 뭐야~ "
차순경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 누구야 ? "
고참 형사가 물었다.
그러자 차순경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 미친 여자 전화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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