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림, 별들을 바라보면
산과 숲
어둠과 정적
그 속에 몸을 담고
나는 누워 있다
지상의 모든 불을 끄고
다만 밤하늘을 향해
밤하늘엔 무수한 사념들처럼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조용한 숲에 깃든 어둠
나는
태고의 밤과 함께 누워 있다
마음을 찬란한 밤하늘의
별 밭에 펼쳐 놓은 채
그러자 온 하늘의 별들이
내 안에서
빛나고 있음을 느낀다
내 마음은 별들 사이를 걸어
우주의 무한 속을 거닐어 본다
그러자 온 우주의 호흡이
나의 호흡 속에
닿아 옴을 느낀다
밤이 내게 열어 준
신비로운 세계
그리고 하늘이 내게 열어 준
무한에 대한 감각
그 감각을 타고
나는 높이높이 솟아 오른다
그리하여 나는
우주의 혼과 한 몸이 된다
구재기, 지음(知音)
하늘을 향하여
쭉 벋은 나무는 부드럽다
그 부드러움으로
바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람으로 하여
이리저리 온몸을 흔들며
누구보다도 먼저
허공을 가득 채우는 나무
나무는 귀를 가진다
그래서 겨울을 지나는 눈은
겨울눈이 아니라
하늘을 향한 열린 귀가 된다
나무의 귀가
활짝 열리는 날
지상에서 봄이 시작되고
비로소 초록이 눈을 뜬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나무에는 지음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윤학,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오른손 검지 손톱 밑 살점이 조금 뜯겼다
손톱깎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
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
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
한참 동안
욱신거렸다
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생긴 모양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도종환, 별 하나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도는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이만섭, 도마
부엌사(史)는 도마가 쓴다
세상에 한 몸 내어 하는 일이라고는
노상 몸에 칼 맞는 일
아침저녁으로 무두질하는 저 잔혹사
태사공의 궁형에 비한들
칼 맞는 도마가 독하다
몸을 내쳐 얻은 음식이 진상되는
그런 도마가 더 질기다
지금은 아내가 깍두기를 담그는 중이다
FM 음악을 틀어놓고 탁탁탁
거침없이 휘두르는 비검무에
사방으로 나동그라지는 무 조각들
칼의 율격이 고르다
저 수신(修身) 자세히 듣자니
도마가 칼 소리를 받아 삼키고 있다
흡반 같은 밀착이다
피할 수 없을 때 즐기는 거라더니
옛말 허투루 듣지 않고
꿋꿋이 외길을 가며
난전의 차력사처럼 배 훌렁 걷어붙이고
몸에 맞는 칼, 표정도 당당하다
결국 칼이 물러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