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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엽, 저 사람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일이 이렇게 엉망이 된 거야
추호의 의심할 바 없이 나는 그를 지목했다
엄지는 하늘을 가리키고
검지는 늘 굼뜨기만 한 그를 의기양양하게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
나머지 세 손가락, 분명 구부렸는데
구부린 그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바로 나였다
신달자, 지하철
내 마음 아래 레일이 있다는 걸 당신 알지
늘 의뭉스러운 사내 하나 달리고 있다는 걸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달려도 달려도
종착점에 닿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달리는 걸 멈추지 못하는 사내
지하 어둠 바닥을 달리는 것이
내 가슴을 후벼 파 만든
뼛속 길이라는 것을 당신 알지
꼭 한마디만 남기겠다고
반드시 내 몸에 한 줄만 새기겠다고
뼈를 후벼 파고 들어선 당신
세상 어디에도 나란히 설 수가 없어
내 마음 아래 레일 파고 눈 감고 달리는 사내
세상 밖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고압선의 비명을 쇠붙이 긁는 소리로
지익
내 뼛속을 오늘도 지나가는 당신
나호열, 모란꽃 무늬 화병
한 겨울
낟알 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 한 가운데
외다리로 서서 잠든 두루미처럼
하얗고 목이 긴
화병이 내게 있네
영혼이 맑으면 이 생에서
저 생까지 환히 들여다보이나
온갖 꽃들 들여다 놓아도
화병만큼 빛나지 않네
빛의 향기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문 반의 발자국 소리
바라보다 바라보다 눈을 감네
헛된 눈길에 금이 갈까 봐
잠에서 깨어 하늘로 멀리 날아갈까 봐
저만큼 있네
옛사랑도 그러했었네
이가림, 새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이음새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이음새를
줄여서 새라 부르나 보다
구재기, 저수지에서
물결이 흔들리자
모든 게 사라지는가 싶더니
모든 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물결이 조용해지면서부터였다
조용해진다는 것은
제 몸을 스스로 낮춘다는 것
저수지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맑은 물 밑까지
훤히 보이는가 싶다가
항상 높이 존재할 수 있는 하늘이
조용한 물속에
몸을 내릴 줄 안다는 것을
머리 숙여 하늘을 우러르며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