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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사랑하고 말았다
게시물ID : lovestory_860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5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21 22:32:2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bgmstore.net/view/juHz0






1.jpg

최영철쑥국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애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그대 꼬드겨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그래도 그래도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 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2.jpg

류정희상사화

 

 

 

생각이 달라도 사랑이 되는지

사랑하고 말았다

사랑하면 할수록 생각도 많아졌다

금을 긋고 등을 지고 살아도

붉게 피는 꽃

가는 길 빤히 알면서도 길을 놓치는

그 깊은 바다를 어떻게 건너 왔는지

생각이 달라도 어떻게 나를 열고

들어 왔는지

먼 길 아니어서 돌아와 보면

난데없이 솟구쳐 홀로 꽃으로 선 당신







3.jpg

박노해잎으로 살리라

 

 

 

꽃이 아니라

잎으로 돋는다

 

꽃으로 나서기 보다

잎으로 받쳐 드린다

 

꽃처럼 피었다 지기 보다

언 땅에 먼저 트고 나중에 지는

나는 잎으로 살리라

 

푸른 나무 아래서

너는 말하리라

꽃이 아름다웠다고

 

떨어져 뿌리를 덮으며 나는 말하리라

눈부신 꽃들도 아름답지만

잎이어서 더 푸르른 삶이었다고







4.jpg

서수찬그리운 이불

 

 

 

법성포에 오래간만에 돌아온 나를

수천만 번 들여다보았을

물고기 눈동자마저

업신여긴다 싶어 일부러 바닷가 쪽을 피했다

발바닥의 조개껍데기를 닮아 있는

그립던 상처들

살 속 깊이서 아는 체를 한다

얼마나 수혈을 받고 싶었던 땅인가

살 속에서 하나하나 비린내를 건져 내어서

잊어버리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살 속에 닻은 깊이 내려진다는 것을

작아진 고향은 미리

알고 있었나

한눈에 피보다 진하게 누구네 장남 아닌가

알아봤을 때

몰래 숨어드는 난처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나도 흔하디흔한 물고기가 아니라

비로소 사람의 이름을 갖네

뒷덜미를 후려쳐서 내쫓아 버릴 것 같던

법성포의 여러 손길들

해당화처럼 살며시 흔들려 주네

밤새 비린내를 이불로 덮어주는

아버지의 손길이 참 많이 늙어 있었다







5.jpg

고영민나이테 속을 걸어

 

 

 

제재소 옆을 지나다가

담 옆에 켜놓은 통나무 하나를 본다

잘린 단면의 나이테가 선명하다

여러 굽이 에돌아 만들어진 나무 속 등고선

해발 몇백 미터의 산을 품고

걸어온 첩첩의 붉은 산길이여

나무는 산정으로 오를수록

점점 몸피와 나이를 줄인다

청명한 공기와 햇빛으로부터

아득히 멀고 먼

걸음을 옮길수록 숨막히고 어두운

나무의 안

가는 실금의 첫 나이테가

제 생의 마지막 등고선

최고의 산봉우리였다네

숨을 고르며 오랫동안 산정에 서 있다가

하산한 나무 한 그루가

뿌리제 신고 온 투박하고 낡은 신발을

산속에 벗어놓고

가지런히 누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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