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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천,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고래는 제 아기들을 먼 데서 낳아 돌아오고
멀리 있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가끔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멈춘 걸음을 끌고 가는, 스스로의 발등을 내려다보게 한다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돌아보면 그 자리에 아직도 네가 서 있는 걸 믿고 싶어지는
길상호, 돌탑을 받치는 것
반야사 앞 냇가에 돌탑을 세운다
세상 반듯하기만 한 돌은 없어서
쌓이면서 탑은 자꾸만 중심을 잃는다
모난 부분은 움푹한 부분에 맞추고
큰 것과 작은 것 순서를 맞추면서
쓰러지지 않게 틀을 잡아보아도
돌과 돌 사이 어쩔 수 없는 틈이
순간순간 탑신의 불안을 흔든다
이제 인연 하나 더 쌓는 일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벌어진 틈마다
잔 돌 괴는 일이 중요함을 안다
중심은 사소한 마음들이 받칠 때
흔들리지 않는 탑으로 서는 것
버리고만 내 몸도 살짝
저 빈틈에 기워 넣고 보면
단단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층층이 쌓인 돌탑에 멀리
풍경소리가 날아와서 앉는다
구재기, 세수를 하며
우리는 사는 날까지
거품을 일궈
얼굴을 닦아내야 한다
그리고 아침을 떠나서
내일도 똑같이 닦아내야 할
두꺼운 얼굴을 준비해야 한다
이정숙, 달
그도 끓어오를때가 있었다는 것 분명한데
어느새 담담히 맑아져 내려다보고 있다
아스팔트 위 물웅덩이에도
울분 토하는 사내의 술잔에도
고단한 농부의 가슴에도 떠올라
시름을 씻어주는
그의 가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갖 번뇌 끓어올라
물길조차 발길 돌린
첩첩의 고행길이었음 완연한데
나는
어느 만큼 가야
산은 산으로 그대로 빛나고
물은 물로써 유유히 흐를 수 있을까
박형준,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다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다
반쯤 열려 있는 절방
여자는 머리를 깎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무릎에 경전을 단정히 펴놓고 있다
들끓는 침묵을 안에 가두고 있다
남해 금산 푸른 물빛
고개 숙인 얼굴에 어른거린다
연꽃무늬 새겨진 문살에 앉아 있는
잠자리 한 마리
여자는 경전을 무릎 위에서 내려놓는다
절 마당에 켜지는 석등(石燈)
반쯤 열려 있는 절방 문에 황혼이 번진다
암자 밑 천 길 낭떠러지
잘 말린 날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날아가는 잠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