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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치기 무섭게 급식소로 달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당연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급식을 먼저 먹으면 그만큼 자유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급식을 먼저 먹는것은 이익 창출을 위한 행동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급식을 먼저 먹는다> 에서 전제하고 있는 말은 <급식소 대기줄의 앞쪽에 서 있다> 이다. 원하는 대로 급식을 먼저 먹고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적어도 급식소 대기 줄의 20번째 안에는 들어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고등학교 문과의 경우 3층에 위치한 탓에, 2층의 이과와는 급식소로 달려가기까지 5~7초의 막대한 시간차가 생긴다. 거기에, 심화반의 동료와 합류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미 이과는 급식을 배급받아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면 문과 학생들은 영원히 이과보다 밥을 늦게 먹어야 하는 <급식의 딜레마>에 갇혀있어야 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모든 행위를 <이익>과 <손해>로 나누어 이익을 최대화 하려는 실용주의 철학자 중 한명인 <존 듀이>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문과 학생들은 이과를 제치기 위해 넘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급식소에 달려갈 이유가 사라진다. 이를 수치화 할 경우 급식소에 뛰어갈 때의 기회비용은 명확히 나타난다.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급식을 먹으러 빨리 갈 때의 만족 수치는 (+) 1개 이고, 천천히 갈 때의 만족 수치는 (+) 4개 이다. 또한 불만족 수치도 급식을 먹으러 빨리 갈 때는 (-) 4개, 천천히 갈 때는 (-) 1개로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수치화된 표를 보면 급식을 먹으러 빨리 가는 것이 손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교 급식 뿐만이 아니라, 뭔가를 남들보다 먼저 하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 보면 서두르는 것의 숨겨진 단점이 드러난다. 예부터 선조들은 관직에 나가는 보편적 행위 대신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겼다. 이처럼 우리도 마음에 여유를 지니고 급식을 먹으러 가는 일의 즐거움을 마음에 새기면 어떨까? 「송호인」「급식의 경제학」 |
ㄱ. 최근 들어 경기가 회복되려는 모습을 보인다. ㄴ. 그 조각의 모습은 이국적이야. ㄷ. 당시 미국의 정치적 모습은 어땠을까? ㄹ. 일본의 문화가 전파되는 모습은 이상해. ㅁ. 저기 축구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