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덕에 오늘은 무료하지 않을 전망이다.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간혹 있는 비소식에 설레였건만 일기예보는 빗나가기 일수였고
간 혹 내리는 비는 이슬비인데다 너무 짧게내리다 그쳐 허망하기만 했다.
자정부터 내리기로 되어있던 예보를 보고 기대를 했건만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구름 낀
밤하늘만 두눈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지친 몸을 달래려 자리에 누워 잠이들기만 바라던 그 순간 처음엔
착각인줄만 알았던 창문을 두드리는 그 소리에 모든 실망과 피로가 날아가버리는 환희의
순간이 다가왔다.
세차게 내리는 거샌 빗줄기, 실로 호우(豪雨)라 할 수 있다.
내리는 모양세로 보건대 쉬이 그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장담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상황이 오기를 고대하며 매일 준비해둔 덕에 지체하지 않을 수 있을 터.
불빛하나 없는 어두운 방에서 요대의 버클을 단단히 채우고 짙은 우의를 위에 걸치니
어둠에 동화된 듯 만족스럽다.
이제 준비는 다 되었다. 이제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한 해가 다르게
체력적으로 부담스럽고 걱정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쉬운 것 보다도 제약이 걸려서 힘든
상황일수록 목적을 달성했을때 그 쾌감이 크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두근 거리는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스스로 세워둔 제약들을 잘 지켜왔기에 지금까지 실행후의 만족감으로 다음해를 기다리며
한해를 넘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준비가 잘 되어있는지 점검을 해야한다. 워커의 끈은 단단하게 잘 묶여있고 갑갑하여
영 어색하지만 양손에 라텍스 장갑도 손상된 부분없이 잘 씌여있다. 더불어 몸에 밀착되는 긴팔
옷과 수영모는 혹시라도 모를 실수를 방지함이다.
이정도 준비라면 궂이 비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터이지만 오랜 원칙과 습관이기에 그것을 깨고 싶지는 않다.
우의의 가슴어림 부근을 체워두었던 단추를 다시 풀고 손을넣어 장비를 손에 쥐어본다. 손에 감기는
느낌이 나쁘지않다. 손을 빼어서 동선을 점검해본다. 빠르고 능숙하게 손과 장비가 빠져나온다.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다. 마트나 시장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식도이지만 그 날카로움은
흔하게 볼 수 없을정도로 잘 연마되어있다.
이제 더 지체 할 것 없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덕에 오늘은 무료하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