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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더스 ~ 인고의 끝에서
게시물ID : panic_860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솔잎사이다
추천 : 12
조회수 : 1887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2/03 16: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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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됐다."

 계의진은 폭약 뭉치에 전파를 수신할 부품을 연결했다. 건전지 넷을 꽂아두었으니 적어도 48시간은 갈 것이다. 작전 시간의 네 배. 안심이다. 이제 언제든 격발기를 누르기만 하면 비상시에 쓰는 이 발전기 또한 산산히 부숴질 것이다. 계의진은 이런 중요한 시설에 CCTV를 단 하나도 설치해두지 않는, 빡빡하면서도 은근히 허술한 이 나라 보안에 이번엔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다 때가 되면 터뜨리는 것이다. 이번 작전에서 계의진은 연락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었다. 공개수배란이 바뀌는 순간 터뜨리기만 하면 된다. 경찰이 설치한 텔레비전이 거리 곳곳에 설치된 것이 이 나라 정권의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공개수배란에 불순분자의 신상명세가 적혀 있기에 대통령 얼굴은 몰라도 불순분자 얼굴은 아는 것이 경찰의 수고를 덜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부터 끝날 거야.'

 공개수배란에 신실한 충복의 신상명세까지 걸리게 된다면 정말 볼만할 것이다. 계의진은 경치가 좋은 커피숍 창가에서 느긋하게 하품했다. 만약-그럴 일은 없겠지만. 로켓의 해킹이 실패해도 괜찮다. 자신의 폭약이 불량이어도 괜찮다. 로켓의 해킹이 실패하면 다음을 노리면 된다. 자신의 폭약이 터지지 않는다고 해도 시스템의 신뢰는 크게 무너질 것이다.격발기를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면 그만이다. 폭약이야 어차피 또 만들면 될 일이고. 기회는 많다. 게다가 알리바이도 이렇게 있잖은가.

 계의진은 그 치안장관 도베르만의 계좌를 해킹하고도 들키지 않았던 해커가 이번에 실패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점원이 가져다 준 커피를 계의진은 느긋하게 즐겼다. 이런 여유가 도대체 얼마만인가 싶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사람들이 잡담하는 소리. 진한 커피의 향.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이 이상의 행복이 없는 것 같았다. 계의진은 행복에 젖어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이 다음에 올 거야."

 대통령 욕했다고 낙인이 찍혀 강제노역을 하거나, 빵 한 조각이 아쉬워 싸우거나, 구정물을 마시다 병에 걸릴 일도 없는 세상을 모두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황홀했다.

 황홀한 느낌이 커피의 따스함과 함께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잠이 솔솔 올 정도로 따뜻한….

 

 * * * * * *


 강렬한 조명이 계의진의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조명이 거두어지자 계의진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칼 슈타이너. 독일계 개자식. 도베르만. 나탈리와 미나를 죽인.

 계의진은 당장이라도 달겨들어 목을 조르고 싶었지만, 몸이 철봉에 단단히 묶여 그럴 수 없었다. 

 도베르만은 계의진의 그 행동을 보고 감탄했다.

 "간만에 정말 좋은 손님이 오셨구만."

 계의진의 뺨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공예품을 만지듯.

 "난 그런 눈빛이 좋아. 의지가 느껴지거든. 강한."

 손가락이 계의진의 턱을 타고 오르내린다. 

 "그 눈빛은 본능이 서로 자리를 바꾸었을 때 생기는 눈빛이지. 죽이고자 하는 욕구가, 살고자 하는 욕구의 자리를 차지한."

 엄지가 입술을 부드럽게 훑는다.

 "그건, 의지가 본능을 이겼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지." 

 계의진은 도베르만의 엄지를 강하게 물었다. 도베르만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표정을 굳혔다. 계의진은 입안의 피가 호흡에 따라 보글대는 것을 느끼며 웃어보었다. 

 "그래. 그런 의지 말일세."

 도베르만은 의장용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엄지를 잘랐다. 늙고 질긴 살과 연골을 고기처럼 썰어냈다.

 지켜보던 군의관이 황급히 달려와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단검을 내동댕이친 도베르만은 계의진의 얼굴을 가까이서 똑바로 쳐다보았다.

 "오늘 취조는 심심하지 않겠어. 그렇지?"

 계의진은 대꾸 대신 엄지를 도베르만 얼굴에 뱉었다. 도베르만은 미소지으며 손짓했다.

 군인 둘이 계의진 팔뚝에 주사부터 꽂았다. 맞은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 

 "진정제일세. 이해해주길 바라네. 호송되는 와중에도 사람을 죽이니 별 수 있나."

 도베르만은 계의진의 왼편에 눈짓했다. 계의진은 왼편에 묶인……, 무언가를 보았다. 키가 180센치는 되는 사람인데, 여자라는 것을 겨우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망가진 사람이었다.

 "저래 봬도 지금 멀쩡하네. 나머지는 아직 안 깬 모양이구만. 가세나."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과 똑같이 묶인 사람이 더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로켓."

 군인들이 계의진을 부축해 질질 끌고 갔다. 도베르만은 엘리베이터에서 P를 누르고 0604를 차례로 눌렀다. 계의진이 보기에 저것은 특별한 곳으로 가는 암호였다. 그걸을 잊지 않으려 머릿속에 되뇌었다.

 도베르만은 계의진을 슬쩍 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은 취조실이라기 보단 부자들이 사는 펜트하우스 같았다. 그러나 지금 계의진 눈에는 모든 것이 무기였다. 창을 깨고 던지는 것부터, 대리석 욕조를 이용한 물고문까지. 전부.

 계의진은 어떻게든 여기서 틈을 찾아 도베르만을 죽일 것이다. 노련한 늑대가 사냥감을 위해 기다리는 것처럼, 그 또한 기다릴 것이다.

 군인들은 가죽 커버가 씌워진 침대에 눕히고 구속구를 채워 묶었다. 워낙 단단히 묶어서 목을 틀어 다른 곳을 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무슨 고문을 하더라도 견뎌주마.'  

 도베르만은 불을 모두 껐다. 눈을 감았을 때 보게 되는 어둠보다도 더욱 깊은 어둠이었다. 그리고 빛줄기가 하나 생겼다. 그 빛줄기는 계의진으로 하여금 도베르만의 얼굴만 간신히 보이게했다. 

 "그거 아나? 단순히 목을 매달거나 잘라 버려도, 사람의 뇌는 혈액이 남아 있는 동안 고통을 인지하면서 죽어가네.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 안 드나?" 

 따끔. 계의진의 팔뚝에 주사기가 꽂혔다. 

 "그래서 내가 간곡히 주장해서, 바꿨네."

 다시 따끔. 이번엔 목이었다.

 "지금의 사형 방법은 세련되면서도 자비롭지. 특별히 배합한 수면제를 혈관에 계속 흘려주는 게 끝일세. 그건 정말 배합이 잘 되있네. 호흡이 멎는 고통이나, 심장이 멎을 때의 고통도 느끼지 않게 되거든. 아주 편안한 죽음이야. 그저 깊은 잠을 자는 것처럼. 아무런 고통 없이." 

 "벌써 죽일 생각부터 하는군. 미친 살인광."

 도베르만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를 죽일 생각이 없네." 

 "아니. 넌 날 죽일 거야. 넌 살인의 쾌락에 눈 뜬 녀석이거든. 그렇지 않나? 치안장관님?"

 계의진은 자신을 내려다 보는 도베르만을 보면서 나직이 읊조렸다. 미친 살인광 새끼. 아니라면 부정해보시지!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이는 놈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말일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들려줄 수 있겠나?"

 "너는 미카엘 권을 도와서, 쿠데타를 일으켜놓았지. 반대파는 모조리 죽였고, 시민들의 시위를 폭동이라고 말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어. 그리고 이젠 취미로 무고한 사람에게 낙인을 찍고 잡아 죽이고 있지!" 

 도베르만은 계의진을 불쌍한 아이를 보듯 쳐다보았다.

 "왜 유언비어를…, 사실로 믿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군."

 "유언비어라니! 네놈이 계속 부정할 뿐인 사실이다!"

 "나는 그런 적 없네."

 "그래, 그랬겠지! 네가 직접 죽이진 않았겠지!"

 계의진은 당혹스러워 하는 도베르만에게 계속해서 외쳤다.

 "네 핑계라는 걸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지. 부하들이 제멋대로 한 것 뿐이라고. 아니었어. 그게 아니었어. 네게서 탈출한 사람에게 들었어. 이상한 죄목을 씌워서 사람을 잡아다 갖고 놀고, 질린 사람을 세뇌된 군인을 시켜 죽이고, 그걸 구경하면서 논다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래! 결국 미카엘이나 너나 똑같아! 결국 자기의 죄를 뻔뻔하게 부정하는 것이 정말 똑같아!"

 도베르만의 목에 핏대가 섰다.

 "거기, 둘! 이 새끼 죽여!"

 군화 소리가 이 방에 울리는 것이 들렸다. 군인 두 명이 계의진을 말없이 내려다 보았다. 계의진과 군인의 눈이 마주쳤다. 복면 틈으로 보이는 군인의 눈이 살의와 증오로 시퍼렇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정말로 계의진을 증오하거나, 세뇌를 단단히 받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군인들은 아무 말 않고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정말로 그런 것을 계속 해왔다면, 왜 저 군인들은 자네를 죽이지 않았나?"

 "단순하지. 이 대화를 들었으니, 네 편을 들어줘야지."

 "거기 둘. 정말로 그런 이유인가?"

 멀찍이서 소리가 들렸다.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인가?"

 "비무장. 혹은 포박된 사람을 해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과 법이 상충할 때는 법을 우선합니다!"

 도베르만이 계의진을 돌아보았다.

 "들었나?"

 "세뇌 잘 됐네. 다시 물어 봐. 지금 이 짓거리가 법규를 준수하는 거냐고. 밖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 죽이는 것도 그 잘난 법규냐고."

 "뭐라고 생각하건 자네 자유일세. 하지만 난 법을 어긴 적이 없네."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는 많이 했겠지?"

 도베르만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걸세."

 계의진은 웃었다.

 "너흰 참 웃겨. 어쩔 수 없었다. 뭘 해도 어쩔 수 없었대. 자기들이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우리가 하는 것은 범죄라고. 그렇게 계속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세뇌한단 말이야."

 도베르만이 얼굴을 구겼다. 

 "자넨 당과 국가가 시민들을 세뇌했다고 믿는 모양인데, 그건 사실이 아닐세. 우리 당과 국가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네."

 "했지. 언론부터 장악해서, 뉴스부터가 정부의 잘못은 단 하나도 말하지 않잖아. 그것 때문에 시민들이 당신들에게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내는 거고!"

 계의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리고 그렇게 세뇌된 시민들은 정부가 적이라고 딱지 붙여준 사람을 죽이는 데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돼."

 "장악?"

 도베르만은 무언가 커피를 홀짝이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것은 반박할 말을 찾는 사람의 자세라기보단, 순진한 어린 아이가 성적인 농담을 들었을 때의 반응에 더 가까웠다.

 "게이트키핑이라는 말. 알고 있나?"

 "그래! 잘 알지! 사람들에게 꼭 필요로 하는 정보를 시민들이 받기도 전에, 문을 닫아 차단하는 짓. 바로! 네놈들이 하는 짓!"

 "진정하게. 흥분은 건강에 좋지 않아."

 방에 고기 냄새가 솔솔 풍겼다.

 "뭐, 사실 어떤 뉴스들은 데스크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일이 있긴 하지."

 고기가 꽃힌 쇠꼬챙이가 도베르만 입 앞에 내밀어졌다. 

 "그런데 원인은 왜 말하지 않는가? 사실 원인도 단순하네. 제한된 시간 안에 알짜배기만 전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내보내지 못하는 게 있는 법이니까. 그 뿐일세. 단순히 시간 문제지."

 도베르만은 쇠꼬챙이에 꽃힌 고기를 한 점. 이로 뽑아 먹었다. 계의진은 흐르는 육즙이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방송을 너희가 모두 장악하고 있는데 무슨 시간이지?"

 "질문은 하나씩 하게나."

 도베르만은 눈을 감고 고기를 천천히 씹었다.

 "예를 들면 광고도 있고.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이 있잖나. 노동의 피로를 달래주기 위해선 그러한 것이 꼭 필요하거든. 설마 이것까지 부정하진 않겠지?"

 고기가 계의진의 입술에 닿았다. 계의진이 입을 굳게 닫자 고기는 물러갔다.

 "그리고 우린 언론사를 장악한 적이 없네. 심지어 그 간단한 보도지침조차도 내린 적이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당은 자유의지를 존중하네. 그래서 내버려뒀지. 사장을 선별해 앉히는 치졸한 짓따위도 하지 않았네. 그곳의 사장들은 그저 방송사 내부에서 착실히 일해서 승진한 사람들 뿐이야. 정 원한다면 역대 사장들의 명단과 이력을 보여줄 수도 있네. 그 이력엔 거짓이 단 한 글자도 없다는 걸 내 보장하지."

 계의진은 비릿하게 웃었다.

 "말하지 않은 사실도 있을 텐데. 아닌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을 걸세.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상, 조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네."
 "왜 그 사장들이 세뇌됐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지?"
 도베르만은 가만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내기 하나 할텐가? 내가 반주를 몇 개 들려주면, 그 곡의 제목을 맞추게. 단 하나라도 맞춘다면, 나는 자네의 말을 인정하고 풀어주겠네. 거기에 더해 나는 자네와 같은 편에 서서 함께 싸워주겠네. 어떤가?"

 "네 거짓말을 어떻게 믿지?"

 "이건 분명히 맹세할 수 있네. 헐리. 마이클. 자네들이 우리의 공증인이 되어주게. 내가 이 내기를 없던 것이라고 우기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나를 고발하게."

 "알겠습니다."

 도베르만은 단말기를 꺼냈다.
 "할 텐가?"
 계의진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 같았다.
 "좋아. 놀아주지."
 "난 이렇게 진지하게 임하는데, 그저 장난으로 치부하다니. 좀 슬프군. 어쨌건 시작하겠네." 
 단말기에서 강렬한 드럼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지만, 제목이 기억나질 않았다. 심지어 가사가 있는 것이 분명한 곡임에도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곡의 제목은 '혁명의 깃발이 나부끼고'일세. 알다시피 우리 위대한 미카엘 권 각하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곡이지. 워낙 곡조가 좋아서 여기저기 쓰이지."

 도베르만은 다른 곡을 틀었다. 낮고도 진중한 음색의 트럼펫 소리. 하지만 계의진은 알 수 없었다.

 "이 곡은 우리 당가일세. 당가라는 것을 제하고도 정말 좋은 곡이지. 손으로 반기고, 발로 나아가."

 도베르만은 당가를 군가처럼 부르다가 다른 곡을 틀었다.
 이번 곡은 굉장히 특이했다. 전자음들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경박한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쓰는 곡을 아틀란스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곡의 제목은 '아틀란스여, 영원하라' 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이건 우리의 국가일세. 학교다닐 때 많이 들었을 텐데?"

 "이 사기꾼! 악기부터가 저렇게 다른 데 어떻게 맞춰!"

 도베르만은 대답 대신 다른 곡을 틀었다. 생소한 전자음으로만 되어있었지만, 그것은 아틀란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곡조였다.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 주고 싶어요…."

 "자네의 말대로 우리가 세뇌에 힘썼다면, 왜 당과 국가를 향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노래를 자네는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텔레비전보다도 먼저, 확실하게 기초 교육 시설에서부터 가르치는 노래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째서 광고 노래는 그렇게도 잘 기억하나? 설마 일개 과자 회사가 국가보다도 더욱 강한 세뇌 기법을 쓰기 때문이라고 하진 않겠지?"

 계의진은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네의 테러 또한 이해가 가질 않네. 말해보게. 발전기에 폭탄을 설치해서 무얼할 셈이었나?" 
 "…자유를 시민들에게 주려고 했다. 왜?"
 도베르만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네들의 계획은 알고 있네. 시민들 모두에게 누명을 씌우는 치졸한 짓. 그리고 오류를 정정하지 못하도록 모든 발전소를 날려버리면, 명령만 남은 경찰들은 시민들을 체포하려 들테고, 시민들은 억울한 마음에 싸우게 되는 거지."
 표정을 굳힌 그는 계의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은 자네의 적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는 선량한 시민도 포함되어 있겠지. 그것도 필요한 희생이었나?"
 계의진은 침묵했다.
 "그리고 자유? 우리는 줬네. 정말로 당이 모든 국민의 정신과 육신을 지배했다면, 자네의 그 생각과 행동은 뭐였단 말인가?"
 "그런 건 자유가 아니야."
 계의진은 힘을 쥐어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길고도 긴 말이었다.
 "내 가족이 누명을 써서 죽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도베르만이 단말기를 계의진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거리의 CCTV에 녹화된 영상이었다. 거기엔 두 여자가 군인들에게 쫓기는 장면이 보였다.
 "나탈리! 미나!"
 쫓기다 넘어진 나탈리는 거리에 널부러진 보도블럭을 주워 군인들에게 던졌다. 군인 하나가 힘없이 쓰러졌다. 군인들이 나탈리를 에워싸자 미나는 군인의 다리를 힘껏 깨물었고, 군인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며,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딫혔다. 도베르만은 단말기의 영상을 껐다.
 "작년에 벌어진 폭동을 찍은 영상 중 일부일세. 두 사람은 분명 폭동에 참여했었고, 군인들을 공격하다 체포되었네."
 계의진은 소리쳤다.
 "너나 똑바로 봐! 정당방위잖아!"
 "저 군인 둘은 죽었어. 네 아내와 딸은 살았고."
 "어쨌든 결국 죽였잖아."   
 도베르만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계의진을 보았다.
 "분명히 말하건대, 난 절대 저 둘을 죽인 적이 없네."
 "죽게 내버려뒀지. 너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어. 누명을! 벗겨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 않았지!" 
 계의진은 당장 이 속박을 풀고 도베르만에게 달겨들어 목을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뭔가 단단히 오해한 모양인데, 내겐 사람을 무죄 방면할 능력이 없네. 그럴 권한도 없고."
 "안 한 거겠지."
 "이보게. 꿀을 먹는 것 밖에 모르는 나비가 쇼스타코비치의 제3번 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던가? 같은 걸세."
 "달콤한 꿀을 먹는 데에만 정신이 팔렸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도베르만이 한숨을 쉬었다.
 "그저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일세. 자네 가족이 겪은 참변과 그 고통은 나 또한 이해하네만, 그런 태도는 곤란하지."
 둘 사이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도베르만이었다.
 "결국 자네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거로군. 그럼 내가 자네 손에 죽는다면 이 일을 그만 둘텐가?"
 계의진은 말하지 않았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다른 목적이라도 생긴 건가? 
 천천히 입을 여는 것을 본 도베르만은 들을 준비를 했다.
 "…다신 잃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건 원치 않아. 그리고 낙인이 찍혀 평생 노예가 되는 이 사회 구조도 원치 않아. 당신들의 선거 조작으로 이 세계를 입맛대로 바꿔 놓은 것도 원치 않아. 배고픈 삶도 원치 않아. 별 이유 없이 불순분자 딱지가 붙는 것도 원치 않아. 엘리트 계층만 존중받고, 우리는 존중받지 못하는 것도 원치 않아. 우리가 고통받을 때, 너희만 행복을 누리는 것도 원치 않아."
 도베르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 그 자체를 원하는 거군. 맞나?"
 "맞아."
 도베르만은 자신의 턱을 손으로 문질렀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러나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라 장담하나?"
 "물론."
 "그런가? 그럼 우리가 물러나게 된다면, 그 다음엔 뭘 할 건가? 자네가 구상한 평화의 길이 있는 것 아닌가."
 "그건…."
 계의진은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떠올렸다.
 "우선, 모든 낙인을 없앨 거야."
 "왜지?"
 "왜냐하면 그 낙인을 한 번 달면, 능력에 상관없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절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
 도베르만은 웃옷을 벗었다. 그리고 목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엔 노동교화수의 바코드. 낙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출신부터가 좀…, 위태로웠지. 노동교화형의 증거를 지닌 채로 이등병부터 시작해 치안장관이 되기까지의 고난…."

 도베르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해냈지."

 계의진은 말문이 막혔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자네가 알기나 하나?"

 "…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얻은 거지?"

 "난 준법시민일세."

 도베르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네 조직의 계획을 잊었나? 어째서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처형은 죄악이고, 자네들의 폭동 계획은 선인가?" 

 계의진을 보는 도베르만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차라리 도덕적으론 우리가 더욱 우월하지 않나? 우리는 우리의 동의에 의해 직접 일하며 직접 피흘리네. 하지만 자네들의 계획은 뭔가? 피흘리게 되는 것은 우리와 자네들의 계획을 전혀 알지 못했던 시민들 뿐이잖나. 원하는 과실을 먹게 되는 것은 자네들 뿐이고!"

 도베르만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정 우리의 질서를 벗어난 결과를 보고 싶거든, 창밖을 보게. 뭐가 있던가? 그건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그게 자네가 희망하는 자유였던가?"

 계의진은 반박했다.

 "범죄자들이 생긴 건 당신네들이 모든 것을 독점해서 생긴 일이야. 사람들이 풍요로웠다면,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당신들이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어." 

 도베르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우리는 그러지 않았네. 법 또한 그러지 않아. 다만 통제할 힘이 없는 것 뿐일세."

 계의진은 도베르만이 이제껏 본 표정 중에서 가장 침통한 표정을 지은 것을 보았다.

 "나는 자네와 마찬가지로 그런 불평등과 범죄를 증오하네. 나 또한 죽이고 싶네. 그리고 법 또한 그것을 허락하고. 군대를 풀어 범죄자들을 진압하고, 음식을 나눠주고, 하수도를 설치해주고도 싶네. 하지만, 저 바깥은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야. 우리의 정예병들도 저 무자비한 범죄자들 틈바귀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일세. 그냥 자살행위란 말일세. 그리고 그 어떤 지휘관도 부하에게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권리는 없네. 부하도 지휘관이 내리는 자살 명령을 거부할 권리도 있고."

 "시도도 하지 않았잖아."

 계의진의 으르렁거림에 도베르만은 부드러운 말로 답했다.

 "아주 높은 곳에 있는 벼랑을 상상해보게. 그리고 벼랑 너머엔 무척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집과, 식수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낙원이 있다고 말일세. 그리고 벼랑과 낙원 사이에 있는 틈을 상상하게. 텅 비어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틈. 그리고 벼랑과 낙원 사이엔 백년은 넘어 형체만 간신히 남은 외줄 뿐이라고 생각해보게. 방법은 의지해서 지나는 것 말이야. 그것을 망설이는 사람을 지나갈 시도도 하지 않았다해서 비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나?"

 "그런 엿같은 비유는 필요없어."

 도베르만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일세, 자네들의 오해와는 달리, 우리는 우리 당원이나, 우리에게 협력하는 고위층이라고 해서 용서하고 그러진 않아. 동일범죄, 동일형벌이지. 정 증거를 원한다면 보여줄 수도 있네. 재판기록부터 처형 영상까지 전부."

 계의진은 말을 잊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몇가지 예외가 아닐세. 수도 없이 많지. 풍요로웠다면 범죄는 없었을 거라고 했나? 우리 당 소속 의원들이 저질렀던 범죄가 그 반증일세."

 도베르만은 조용히 말했다. 

 "자네 같은 사람의 심리가 뭔줄 아나? 우리가 물러나면 그 자리를 아주 선하면서도 훌륭하면서 모든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올 것이라 믿는 것이지. 근거도 없는데 말이야. 그건 구세주를 희망하는 종교인과 다를 바가 없네.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아주 무섭지. 자신들이 원한다는 평화를 스스로 깨부수지.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메시아의 강림을 위한 번제물이고. 결국 결과는 지금보다도 끔찍한 광기와 폭력일세. 자네들이 바라는 것은. 당도 그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테니. 설마, 자신들이 메시아라고 외칠 셈은 아니겠지? 자네들이 진정한 메시아라면, 그 근거를 가져오게. 그런 오만불손함은 또 다른 우리를 불러올 뿐일세."

 계의진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래도 우리에게 자유를 빼앗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도베르만은 계의진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나는 그걸 긍정하겠네."

 빛줄기에서 물러난 도베르만은 침대를 손으로 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대가 간 곳은 같은 층의 어떤 방이었다. 그리고 도베르만은 침대를 세워서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장치에 넣었다.

 "결국 냉동. 이걸 바깥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건 적법한 절차에 의해 하는 걸세."

 도베르만은 손가락을 딱 퉁겼다.

 "언제 말해줘야할지 몰라 말하지 못했는데, 이제 말하면 되겠군. 자네는 죽었어."

 '갑자기 무슨 소리지?'

 계의진이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도베르만은 적당한 말을 고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이미 사형집행을 끝마쳤다는 소리일세. 자네는 이미 죽은 사람일세."

 계의진은 잠시 가만히 있다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따위의 꼼수를 부려놓고 합법 운운하다니. 그게 네 나름대로의 양심이었던가? 네 당의 양심이야?"

 도베르만은 계의진 앞에서 잠시 물러났다. 군인들이 가져온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것은 엉성하게 만든 인체분해도 같았다. 뼈는 하나도 없었고, 혈관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심장은 전극에 연결되어 뛰고 있는 것이 선명히 보이는 데다, 남성은 혈관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쉴새 없이 움직이는 펌프와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고, 맨 위엔 사람의 머리가 있었다.

 군인들이 가져온 것은 거울이었다. 

 "어쨌건 자네는 법적으로 시신이었고, 연구용으로 당 연구소에서 구입하게 되었네. "

 도베르만은 계의진을 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날 탓하지 말게. 이것을 고안한 것은 내가 아닐세."

 손가락으로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이름이 제바스치안? 음, 기억이 잘 안 나는구만. 뭐 어쨌건 그 자는 작년 폭동 주모자 중 하나였지. 내가 직접 취조하면서 그 자에게 물었지. 도대체 당의 지도를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말일세."

 기억을 완벽히 복원해내려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자 이렇게 답하더군. 당신들은 모든 자유를 통제하고 있다고. 당신들의 권력은 경찰과 언론으로 선량한 시민들 갈기갈기 찢어 놓아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짜맞춘다고. 그리고 그 조각난 인간의 마음을 멋대로 갖고 논다고."

 도베르만은 리모콘을 꺼냈다.

 "마치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것처럼."

 리모콘의 버튼이 눌렸다. 계의진의 고함은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코를 파고, 다리를 긁고, 하품을 하고. 정말 자유로운 걸세. 사람들은 이상하게 이런 것을 고마워하지 않는단 말이야. 미카엘 권 각하의 고마움이 좀 느껴지지 않나? 진짜 속박은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던가? 육신은 정말로 자유로웠잖은가."

 리모콘의 버튼이 다시 눌리자 이번엔 계의진의 시력이 좋아졌다. 도베르만의 늙고 노쇠한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 방법은 권력자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닐세. 그건 바로 자네같은 사람의 피해망상에서 나오는 걸세. 저 거대한 권력이 나를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말이야. 하지만 우린 질서를 긍정하는 사람을 공연히 괴롭히지 않아."

 도베르만은 군인들을 불렀다.

 "헐리, 마이클. 이리 오게."

 군인 둘이 계의진의 앞에 섰다.

 "이 정도면, 아들의 복수로 충분한가?"

 "충분합니다."

 도베르만은 계의진의 머리에 플라스틱 헬멧을 씌웠다.

 "난 정말 궁금하네. 왜 자네 같은 자들은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을 보이지 않지? 그저 우리의 깃발 아래에 섰다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단말기가 켜지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를 주고 있다네. 잘 생각해 보게. 지금 기술이라면 나는 자네의 머릿속도 조종할 수 있네. 이렇게."

 도베르만이 단말기를 조작하자, 계의진은 죽고 싶었다. 그것은 자신의 실패나 비통함,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혹은 현재의 고통 따위가 아니라 바로 미카엘 권이 이 불쌍한 인류에게 베푼 깊은 사랑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지 못한 자신을 향한 죄책감이었다.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도베르만이 다시 스마트폰을 조작하자 그런 생각은 모두 지워졌다. 그리고 미카엘 권에 대한 깊은 증오가 계의진의 뇌를 가득 채웠다.

 빌어먹을 놈! 쳐죽일 놈! 육시를 할 놈! 아아! 각하! 각하 만세! 이 개같은! 각하는 제 사랑이십니다! 모든 것입니다! 각하 만세! 빌어처먹을 돼지 새끼! 인류의 폐기물! 인류의 영광! 인류의 모든 죄악 그 자체! 그의 품이 곧 천국이리니! 지옥조차 과분한 놈! 빌어먹을 놈! 쳐죽일 놈! 육시를 할 놈! 아아! 각하! 각하 만세! 이 개같은! 각하는 제 사랑이십니다! 모든 것입니다! 각하 만세! 빌어처먹을 돼지 새끼! 인류의 폐기물! 인류의 영광! 인류의 모든 죄악 그 자체! 그의 품이 곧 천국이리니! 지옥조차 과분한 놈! 빌어먹을 놈! 쳐죽일 놈! 육시를 할 놈! 아아! 각하! 각하 만세! 이 개같은! 각하는 제 사랑이십니다! 모든 것입니다! 각하 만세! 빌어처먹을 돼지 새끼! 인류의 폐기물! 인류의 영광! 인류의 모든 죄악 그 자체! 그의 품이 곧 천국이리니! 지옥조차 과분한 놈! 빌어먹을 놈! 쳐죽일 놈! 육시를 할 놈! 아아! 각하! 각하 만세! 이 개같은! 각하는 제 사랑이십니다! 모든 것입니다! 각하 만세! 빌어처먹을 돼지 새끼! 인류의 폐기물! 인류의 영광! 인류의 모든 죄악 그 자체! 그의 품이 곧 천국이리니! 지옥조차 과분한 놈! 빌어먹을 놈! 쳐죽일 놈! 육시를 할 놈! 아아! 각하! 각하 만세! 이 개같은! 각하는 제 사랑이십니다! 모든 것입니다! 각하 만세! 빌어처먹을 돼지 새끼! 인류의 폐기물! 인류의 영광! 인류의 모든 죄악 그 자체! 그의 품이 곧 천국이리니! 지옥조차 과분한 놈! 

 도베르만은 단말기에서 손을 뗐다.

 "이제 좀 이해가 가나?"

 잠시 지켜보며 가만히 있던 도베르만은 헬멧을 손수 벗겨주었다. 

 "우리 당이 권력을 위해 뭐든지 한다면, 왜 진즉 이 기계를 쓰지 않았을까? 소총보다도 값싼 기계인데."

 계의진의 뺨에 도베르만은 두터운 손으로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하는 것처럼 계의진의 뺨을 쓰다듬었다.

 "어쨌건 나는 자네의 마지막 자유를 침해하지 않겠네. 자네 마음대로 하게. 자네의 뇌는 자유일세. 무슨 생각을 하건 말일세. 나를 죽여도 좋네. 당과 나라를 부숴도 좋네. 우주를 부숴도 좋네. 그건 내가 손대지 않은 자유일세."

 도베르만은 스위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네에게 선물을 하나 주지. 아니, 둘 주지. 아니, 아니. 결과적으로 셋 주는 셈이네."

 도베르만이 스위치를 올리자 계의진 눈앞의 벽장이 열렸다. 

 벽장 안엔 계의진과 같은 모습을 한 두 사람이 보였다. 

 "선물 세 배. 기쁨 세 배."

 두 사람은 계의진의 아내와 딸이었다. 계의진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도베르만과 군인들이 나가자 문은 닫혔다.


 * * * * * *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베르만은 군인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이제 어떻게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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