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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이상한 거울
나는 봄 들판에 거울이 숨어있다는 것을 안다
땅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빛인 듯 튕겨내는 마술 거울은
그 이야기들을 직선으로 튕겨내지 않고
가물가물 미세한 떨림의 곡선으로 뿜어 올린다
그렇게 마술 거울이 퉁겨낸 이야기들은
세상의 온갖 풍경들을 굴절시킨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지랑이라고 말하는데
아지랑이 속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춤이고 노래이다
춤은 들판을 흔들어서 꽃을 피게 하고
꽃은 피어서 다만 세상에 향기를 뿌릴 뿐
다시 찾아올 겨울을 두려워하거나
시드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들판을 흔들어 깨운 건 사랑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안다
봄마다 들판에 아지랑이가 왜 피어나는지를
김왕노, 꽃
난 당신의 몇 부 능선에 피었던 꽃인가
채석강가 채석 위에 핀 꽃은
몇 천 년 제 몸을 공중부양 하여 이른 것인가
내 안에 꽃으로 피었던 당신도
당신 안에 꽃으로 피었던 나도
꽃씨하나 남기지 않은 불임의 꽃이었구나
서로의 가슴 속을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꽃
척박한 세월이라지만
돌 안에도 돌 꽃이 핀다는데
구름의 몸 안에도 구름 꽃 핀다는데
우리가 이제 우리의 꽃이라 부르며
꽃의 씨방에 들어가 요나처럼 울 꽃은
그리고 난
당신의 몇 부 능선에 다시 피어야 할 꽃인가
박남준, 최대의 선물
꽃이 피어나는 건
당신을 향한 내 사랑 때문이다
지금 별똥별이 반짝이는 건
이 밤 당신께 보내는 연분홍 편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산들이 푸른 숲으로 샘물을 품고 있는 것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인생의 나침반을 삼으라고
당신이 내게 보여주는 선물인 것이다
홍영철, 오늘의 나무
여름의 나무는 여름만큼 자란다
겨울의 나무는 겨울만큼 자라고
오늘의 나무는 오늘만큼 자란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만큼 흔들리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만큼 젖는다
주면 주는 만큼 받고
꺾으면 꺾는 만큼 꺾인다
나무에게는 주먹도 총도 없다
그러므로 나무는 전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무는 패망하지도 않는다
정복하지도 않는다
너를 상처받게 하는 것은
너의 보이지 않는 거짓말인 꿈이다
서춘기, 한 모금
실개울에 앉아
꿀꺽
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새는
물이 처음 시작되는 곳
하늘을 우러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