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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에서 홀로 헤드셋을 끼고 한창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던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정이 막 넘어가는 시간. 어느새 담배가 다 떨어져 있었다.
자취방이 외진 곳에 위치했기에 편의점까지 가려면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추위와 귀찮음을 무릅쓰고 담배를 사오는 것과 그냥 참고 내일 가는 것.
선택의 기로에 놓였지만 사실상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헤드폰을 벗어버리고 외투를 집어 들었다.
편의점 봉지를 손목에 걸고 양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오는 길.
어서 들어가서 꽁꽁 얼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발을 녹일 생각을 하던 그때
내가 사는 집골목 어두운 곳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을 때 골목 구석에 쓰러진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취객이 골목에 널부러져 있는 듯 했다.
‘이렇게 추운 날 밖에서 자면 큰일 날 텐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못 본 척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좋은 일 한답시고 나섰다가 피해를 볼 수 도 있다.
‘설마 뭐 별일이야 있겠어?’
막 들어가려던 찰나에 희미하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살려달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다시 그 남자 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정확히 보이지 않았기에, 들고 있던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고 그 남자를 비추었다.
바닥에 흥건한 피.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있는 남자.
너무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모자쓴 남자가... 칼로...”
그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난 도망치듯 내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커튼을 쳤다.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순식간에 찾아오는 적막.
오로지 쿵쾅대는 내 심장소리만 들렸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 무서웠다.
‘내가 뭘 본거지? 시비가 붙어 칼에 찔린건가?’
‘내가 도와주면 살 수도 있는데’
‘하지만 괜히 도와줬다가 이상한일에 휘말릴 수도 있어’
‘아니 어쩌면 도와주려는 사람을 납치하려고 연기하는 걸지도 몰라.’
불과 2~3분이 지났을 뿐이지만 마치 꿈을 꾼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나가 확인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쿵..... 쿵.......쿵
그때 힘겹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람 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 남자의 목소리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정말 다친 사람이라면 당연히 문을 열어줘야 했다.
하지만 두려움과 함께 드는 의문감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칼에 찔린 몸으로 여기까지 기어왔다고?’
그 순간 다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살려주세요.. 문좀 열어주세요....”
너무나 절실한 목소리.
연기를 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확인을 한번 해봐야 한다.
조심스레 현관으로 다가가 천천히 우유 투입구를 열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
남자의 뒤로는 핏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바닥을 짚은 손은 흙투성이인 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든 그 남자의 얼굴.
너무나 절실한 표정으로 우유투입구 너머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나는 외면하지 못했다.
급히 몸을 일으켜 잠금장치를 모두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남자의 안도한 표정이 눈에 들어 온 그 순간
뱃속이 뜨거워지며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문 옆에 다른 남자가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그 남자는 내 뱃속에 쑤셔 넣었던 칼을 뽑으며 조용히 말했다.
“자 어떻게 하는 건 줄 알겠지? 죽기 전에 널 도와줄 사람을 찾아.
누군가 널 도우려고 하면 넌 살아. 아무도 널 돕지 않으면 당연히 넌 죽어.”
힘이 빠져 바닥에 쓰러지며 앞서 칼에 찔렸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난 살았다는 환희와 안도의 미소.
내겐 살인자의 얼굴보다 더 무섭게 보였다.
by. neptunuse
출처 | 적월 - 공포 카페 http://cafe.naver.com/moonof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