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전공자로서 일반인 정도의 식견으로 아직 공부중이기는 합니다만 이종욱 교수는 꽤나 학계에서 뜨거운 쟁점을 일으키시는 분이기는 한것 같습니다.
관학파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조하며 학계와 대립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신 분이시니 말입니다,
제 개인적인 식견으로는 아무래도 좀 부끄러운 이유입니다만 이병도 - 이기백- 이종욱으로 이어지는 학문적 계통에 따르자면 학계를 식민사학이라고 학계를 비판하는 이유가 관점과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강한 어조라고 보입니다만 아무래도 아래 설명할 부분덕분에 말 그대로 식민사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하게 어려운 부분이지요, 인터뷰 등을 찾아보면 문자 그대로 쓴 것 같지는 않지만 저술하신 것을 보면 문자 그대로 이니 말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솔찮게 유사역사학 쪽에서도 시쳇말로 말하는 이병도 라인 이병도 카르텔로 함께 비판받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자면 가장 난감한 부분이 바로 화랑세기입니다.
신라시대 김대문에 의해 저술된 화랑 풍월주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이종욱 교수를 필두로한 서강대 학파를 제외한다면 학계에서는 위서로 취급하고 있는 사료로서 삼국사기, 삼국 유사와 다르게 매우 자극적인 소재가 많아 드라마와 소설에 많이 인용되어 아마 아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일본 궁내성 서릉부에서 일하다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에서 반출해간 것을 발견하고 필사본을 남겼다 라고 하지만 문제는 데이터 베이스화 된 서릉부의 목록에는 화랑세기가 없고, 비밀리에 보관 중이다 라는 것도 일개 하급 직원에 불과한 식민지인이 들어가 볼수 있었가 하는 회의론이 우선되어 제기 됩니다.
또한 당시 사용되지 않은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존재했을리 없는 사회 제도를 존재했다 기록하고 (가령 고위 귀족이 임신한 여자와 정을 통하면 그 아이를 귀족의 아이라고 인정받는 제도 등) 교차 검증이 안되는 점이나 등장하는 향가가 너무 쉬운 점 등과 무엇보다 다른 서책의 필사본을 만들려 했던 것 등이 주요한 위서론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반대로 환경상 창작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향가와 노비의 개념, 그 어디에도 없던 진평왕의 생몰 연도,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는 이상으로 개방적이었던 사회상, 발췌본 보다 현저히 질이 떨어지는 필사본 등이 주요한 진서론으로 제기됩니다.
이러한 화랑세기 뿐만 아니라 학계와 대립하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발해사를 한국사로 보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이지요, 덕분에 동북공정을 긍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심심찮게 일어나는게 사실입니다.
신라의 지배층이 신라멸망 이후에도 꾸준히 고려의 귀족층으로 이어져 왔고 그 영향이 조선의 양반관료사회까지 미쳤다며 신라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평가하는 신라 중심적 사고관과 더불어 현대의 시각을 버리고 고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주장 대로 민족주의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인 이 발해사를 한국사에서 제외하는 더 나아가 고조선 마저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하는 우리 민족의 시작을 삼국시대로 단정하는 관점은 여러모로 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이종욱 교수를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꽤나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 아닐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