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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기, 호주머니 속의 시
어느 하루 나는
팔레스타인의 한 시인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는 강당에서
세계 시민들을 향해
울고 있었다
시를 읽으며
울고 있었다
어느 하루 나는
그 시인의 시를 적어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 하루 나는
시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세계의 구석 어느 어둠 속에서
흐느끼던
시의 소리를 들었다
천양희, 마음의 지진
제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 울어봐야지
제 속의 비명을 꺼내 소리쳐봐야지
소나기처럼 땅에 패대기쳐봐야지
바람에 몸을 길들여봐야지
늪처럼 밤새도록 뒤척여봐야지
눈알 속에 박힌 모래처럼 서걱거려봐야지
사랑 때문에 허리가 남아돌아봐야지
어느 날 문득 절필해봐야지
죽어라고 살기 위해 잡문을 써봐야지
사람 때문에 마음바닥이 쩍쩍 갈라져봐야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봐야지
마침내 갈 데가 없어봐야지
그때야 일어날 마음의 지진
이재무, 눈사람
눈 내린 날 태어나
시골집 마당이나 마을회관 한 구석
혹은 골목 모퉁이 우두커니 서서
동심을 활짝 꽃 피우는 사람
꽝꽝 얼어붙은 한밤 매서운 칼바람에도
단벌옷으로 환하게 꼿꼿이 서서
기다림의 자세 보여주는
표리가 동일한 사람
한 사흘
저를 만든 이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마음의 심지에 작은 불씨 하나 지펴놓고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이
이 세상 가장 이력 짧으나
누구보다 추억 많이 남기는 사람
권경업, 달빛무게
쑥밭재 구상나무는, 열이레
달빛이 무거워 가지가 처졌습니다
누구신가요, 가만히
낙엽 진 내 가슴의 빈 가지에 걸터앉은 이
김명원, 바라다
그대 내 눈에 들길
다른 모든 길 마다하고 오로지 내 몸에 들길
언제였던가 서릿발 줄곧 대나무숲에 장엄히 내려
머나 먼 까마귀 발자국에도 겨울밤이 지워질 무렵
바람 소리가 설핏 스러질 듯 노래로 남아
그대 홀로인 창을 두드린다면
나인 줄 아시길
내 목메임인 줄 내 사무침인 줄 아시길
잔설이 듬성 놓인 저 산녘은
넘치는 내 마음인양 흘러내려 굽은 계곡이 되고
부풀어 터진 언 대지는 그리움으로 솟구쳐 올라
그대 슬픔을 받쳐주는 지평선 되려니
그래, 너무 깊어 한번 디디면 아득한
그대 눈보라에 나 이르려 하니
얼마큼이나 더 소란히 헝클어져야
문득 눈 그친 뒤 살찌우는
고요로 내 사랑
푸른 물 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