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bgmstore.net/view/Ga81F
배용제, 퓰리처상 사진전
고통들이 전시되었다
세련된 관객들을 위하여
빛은 그 순간마다 얼마나 발광했을 것인가
관객들은 고통의 방식과 종류를 관찰하며
탄성을 지른다
정지된 슬픔과 죽음과 울음과 추락과 광기와 공포는
해마다 비슷한 이미지들이 인화되었고
상패의 제목이 새겨졌다
완벽하고 투명한 고통이 선정되는 황홀한 한때
벌거벗은 고통들은 갖가지 포즈를 취한다
찡그린 고통 멍한 고통 웅크린 고통 입벌린 고통
달아나는 고통 놀란 고통
기념 팸플릿으로 집어드는 고통
사각의 틀 안에서 빛나는 고통
부드럽게 발음되는 고통
채집된 화석처럼 사진 속 황홀한 주인공들은
지구의 표본실에 유효기간 없이 저장된다
감각이 정지한다
햇살이 쉴 새 없이 발광하고
우주의 거대한 필름에 지상의 장면들이 채집된다
임선기, 나무를 우러르며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깊이 속에
우리가 아직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무를 우러르며
내가 걷는 것은
내가 아직 그 무엇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강인한, 꿈꾸는 돌
나는 당신 호주머니 속에 들었어요
당신은 나를 가졌어요
아주 가까이 나는 당신의 심장 뛰는 소릴 들어요
손가락에 꾹 힘을 주고 벽을 밀어요
의심하지 말고
조용히 숨을 멈추세요
오래지 않아 당신 몸이 스르르 벽을 통과하듯이
다음 백 년 너랑 살자
달 없는 밤 나를 끌어내 손잡고 도망치는 모습
간절하게 간절하게 마음속에 비춰보세요
단단하게 뭉치고 또 뭉쳐 보세요
이것이어요, 꿈꾸는 돌
이 돌 속으로 걸어 들어간 내 하얀 맨발이
달 없는 밤이면 보일 거여요
당신 가슴에 대고, 당신 붉은 피를 스르르 흘려 넣은
한 덩이 꿈같은 사랑
가지세요, 모두 가지세요
박정수, 파꽃
햇살 끝 염전 같았다
차가운 땅 밑에서 머리를 올려
툭, 터져버리면 그 많은 기억들
사람 모이는 큰 시장 가장 작은 자리에
엄마는 늘 팟단처럼 앉아 계셨다
어린 나는 그곳을 피해 먼 길로 다녔다
잘 묶여진 팟단을 풀면
십 원짜리 동전 소복한 시장 골목이 보인다
노모의 병든 뼈마디처럼
속이 텅 빈 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고집을 하얗게 쏟아 놓는다
박후기, 감기
숙주를 파고드는 병과
함께 누워
약을 먹는 밤은
쓰다
목에 걸린 알약처럼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육신아
물 한 모금 겨우
눈물 한 모금 겨우 삼키며
너를 안고
너를 앓는다
누가
내 안에 들어와
기어이
사흘 밤낮을
울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