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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야, 안녕. (1)
게시물ID : lovestory_858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WithScience
추천 : 3
조회수 : 44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7/19 16: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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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ㅇㅇㅇ

중학교 2학년 때, 한창 사춘기시절에 변덕스럽고 감성에 젖어 방황하던 시절에 아기 강아지가 집에 왔다. 새하얀 피부에 모든 물건들을 손으로 건드려 보는 아기 같은 호기심과 강아지 전용 참치캔을 보자마자 헐떡헐떡 먹어대는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은 날 참 즐겁게 하더라.

이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이 아이의 이름을 '만수'라고 지었다. 당연히 심오한 뜻은 없고 '만수무강'하라는 의미다. 이 녀석이 오기 전에 키운 푸들 강아지가 파보 바이러스로 죽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사내녀석은 아픈 걸 몰랐다. 이름의 작명의 효과인지 원체 튼튼한 남아라 그런지, 설사를 하더라도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컨디션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한 시간 동안 나와 밖에 나가서 무리한 조깅을 하더라도 끄떡이 없다. 하지만 응가를 많이 하는 게 단점이다. 몸 속에서 먹은 양의 두 배의 대변을 만들어내나 보다. 

열세 살이 되어도 만수는 끄떡없었다.    

일주일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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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글을 쓴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글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만큼은 꼭 남기고 싶다. 무슨 사명감 때문에 이렇게 논픽션으로 자판을 두드리는지는 글로 표현을 못 하겠지만, 글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감정이 드는 건 분명하다.

일주일 전에 살면서 처음으로 만수가 산책을 나가자는 말을 듣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보았다.

설사를 다섯 번을 해서 침대 시트에 변을 뭍혀도 자기를 묶는 끈만 보면 마치 살면서 처음으로 산책을 나가는 강아지인 마냥 꼬리를 흔들고 어쩔 줄 몰라 비명을 질러대던 아이가, 오늘은 몇 번 꼬리를 흔들고 마는 것이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나왔지만, 현관에서 빌라 밖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힘들어 한다. 당황스러운 나는 집 앞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뒤뚱뒤뚱 힙겹게 걷는 아이를 보고 너무 안쓰럽고 걱정이 되어 들어서 집에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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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깼다. 만수가 헐떡이고 눕지를 못 한다. 졸려서 자고 싶긴 한데 누우면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말을 못 하니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알지도 못 하겠다. 확실한 건, 앞발 중 한쪽이 신체적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식욕은 넘친다. 놀란 가족들이 간식을 한번 줘 보니 누가 가져갈새라 얼른 뚝딱 해치운다. 참치캔 한 통을 30초만에 해치웠다. 하지만 재워야 한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만수를 엄마는 어떻게든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줬다. 만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는데, 졸려서 우는 건지 아파서 우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엄마는 앞으로 만수와 조깅하는 건 웬만하면 피하라고 내게 일갈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가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뒤로 나와 만수가 뛰어서 조깅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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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에 갔다 온 만수는 예전의 만수로 돌아온 것 같다. 진통제를 맞아서 마치 5년 전의 젋은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집에 미소가 찾아왔다. 

하지만 병원의사는 앞으로 산책은 당분간 자제하라고 조언했다. 아이가 나이가 있다 보니, 예전처럼 뛰거나 심지어 걷는 것 조차도 만수의 몸에 큰 무리가 있다는 거다.

다행히 지금은 씩씩해보인다. 가족들이 관절이 다칠까봐 침대 위로 올라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기가 언제 아팠냐는 듯 점프를 한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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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병원에는 MRI나 CT 같은 고가장비가 없어서 교외에 있는 큰 동물병원으로 갔다. 

만수는 걷지도 못 하고 소변도 못 본다. 대변은 봤지만 방금 설사를 한 게 전부다.

단순한 검사를 하는 데도 겁이 많던 녀석이 숨만 헐떡이고 잘 걷지도 못 한다.

엄마는 5일 동안 병원에서 처방해 준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주사를 맞은 날만 괜찮고, 날마다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말했고, 의사는 사실 만수의 나이가 사람나이로 보면 90살이 넘었고, 심장과 간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오른발이 특히 한번 자극을 줘도 다른 발과는 다르게 반응이 거의 없다는 걸로 보아 뇌와 척수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더라.

'150만원 정도 들 것 같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그 검사를 받으면 100% 낫는다는 보장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150만원은 치료비가 아니라 검사비입니다.'라고 말했다더라. 5일치 소염진통제를 처방받고 집에 왔지만 허탈했다.

만수는 2층 계단을 못 올라올 정도로 다리가 아파서 가족에게 엎혀 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화장실에 소변은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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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아예 못 걷는다.

밥은 안 먹은지 사흘째고, 간식을 봐도, 참치캔에 있는 참치를 보여줘도 꼬리한 번 흔들지 않는다. 가족이 집에 와도 일어날 수는 없지만, 꼬리는 어떻게든 흔들어서 반갑다는 표현을 하려고는 애를 쓰지만, 흔드는 꼬리에서 지침이 느껴진다.

아까 겨우 소염진통제가 섞인 참치를 먹었지만, 이것도 가족들이 먹으라고 해서 억지로 먹은 것 같다.

숨소리는 거칠고 거칠다 못해 넘어갈 것 같을 만큼 거세고 힘겹게 들린다.
예전엔 귀여운 똥배였지만 지금은 터질 것 같은 탱탱한 풍선처럼 배가 부풀어올랐다.
사료는 입에 안 댄지 일주일이 넘어서 초파리가 득실득실거린다.

목마를까봐 물컵을 얼굴에 갖다 대니 얼른 한 컵을 다 마신다.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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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잘 안 돼서 운동을 하고 왔는데 만수는 누워서 꼬리만 흔든다.

내가 슬픈 눈빛으로 보지만 만수는 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주니 심심하다는 눈빛으로 응수한다.

나는 뭐라고 만수에게 이야기했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는 못 보더라도 꿈 속에서 너를 만날 수 있지만, 꿈 속에서 너를 보는 것만큼 괴로운 건 없을 거야. 이룰 수 있는 꿈은 헛된 희망이라도 품게 해 주지만, 널 볼 수 있다는 이룰 수 없는 꿈은 이뤄질 수 없다는 절망만 주거든.' 

'매일 보고싶다는 마음이 솟아오를까봐 너무 겁나는 구나.'

'행복했니? 너는 이제 어디로 갈 거니?'

만수를 번쩍 들고 밖에 잠깐 나가서 바람을 쐬어 준다.

이젠 만수는 걷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대변도 못 볼 뿐만 아니라 바깥세상의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저기 멀리 있는 풍경이 보이지 않냐고 말해도, 고개를 피하고 스르르 눈을 감는다.

졸려하는 것 같아서 5분만 있다가 집에 들어왔다. 서 있는 것 조차도 고통스러워 한다.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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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다니는 만수의 털을 상자에 보관해 놨다.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DNA만으로도 동물을 복원할 수 있다는 공상과학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로 만수가 복원된다고 한들, 지금까지의 추억을 만수가 기억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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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다해서 화장실에 간 다음 소변을 봤다. 혈뇨였지만 참고 볼일을 본다는 것 자체가 대견스러웠다.

네이버에 '노령견 혈뇨'를 검색해 보니 '결석, 방광염, 방광암' 같은 다양한 병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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