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자 이병도의 행적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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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병도>는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낸 채 도일(渡日)하여
[일제식민사관] 확립의 핵심적인 인물들이었던 일제(日帝) 관학자(官學者)들의
적극적인 지도와 도움을 받으며 식민주의 역사연구 활동에 가담하였다
* 이 시기 발표된 대부분의 논문이 일제식민사학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2)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역사왜곡과 말살에 가장 중추적인 조직이었던
[조선사편수회]의 핵심 업무에 종사하면서 전 기간에 걸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고대사 편수작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 1925년 5.8일자로 수사관보(修史官補)에 임명되자
새로 편수하는 조선사(朝鮮史) 중 가장 핵심인
상고사(上古史)*중고사(中古史)*근고사(近古史) 편수부서에 배치되어
우리 상고사(上古史) 말살의 제1급 주역이었던 촉탁(囑託) 금서 룡(今西 龍)의 보조자로서 진력을 다한다.
- 1929년 4.29일부터 <촉탁>으로 승진하여
편수사업이 끝나는 1938년 3.15일까지 계속 수사업무(修史業務)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같은 시기 [조선사편수회]에 관여하였던 <최남선> 선생이 시종일관 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역사의 왜곡과 말살을 꼬집어 역설(力說)할 때
핵심 실무(조선상고사 분야의 실무자인 촉탁)를 담당하였으면서도
유구무언(有口無言)으로 시종일관 일제(日帝)의 편수사업에 협력하였다.
3) 해방 후에도 일제(日帝) [식민사관]을 충실한 전도사로서
지속적으로 후학(後學)을 양성하는 중심에 자리하면서
이른바 [친일두계사학-그가 주장한 단군조선 강역과 도읍지*한사군*삼한정통론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전파하는데 앞장을 섰다.
- <이병도>씨의 유명한 말이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용납할 수 없고 충분한 논거의 이론적 제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용인한다.
주관적인 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 - 한국고대사연구 서문』
그러나 그는 늘 주관적인 해석을 하였으며
충분한 논거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로 우리나라 해방 후 역사를 지배하였고
또한 죽을 때까지 새로운 고증자료의 제시가 없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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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교육학술 62명 중에 이병도, 신석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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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무신 민족사학에 기여한 학자?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 http://blog.empas.com/alswhrwjdrl/28304213
* 친일파 4776명 공개
강영석 고광만 고승제 고원섭 고황경 구찬서 김도태 김두헌 김명식 김상용 김성수 김창균 김한경
김활란 박관수 박마리아 박순천 박영빈 박용구 박인덕 배상명 백낙준 서은숙 손정규 송금선 신봉조
* 신석호 (명단에 있습니다. 그 제자가 김정배, 국립중앙박물관장 최광식입니다. 아시나요?)
양봉화 어윤적 여운홍 오긍선 유억겸 유진오 윤영구 이능화 이묘묵
* 이병도 (명단에 있습니다. 그 손자가 문화재 청장 이건무, 서울대 총장 이장무 입니다. 보셨나요?)
이병소 이숙종 이완룡 이헌구 인정식 임숙재 장덕수 장응진 정구충 정만조 조기홍 조동식 조재호
조한직 주운성 차사백 최남선 최동 허하백 현상윤 현채 현헌 홍승원 홍희 황신덕
* 이땅은 매식자들로 득실 득실합니다.
일제가 두둑한 군자금으로 주변을 현재도 경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이병도, 신석호가 친일파가 아니라는 주장은 지나가는 개한테나 하시기 바랍니다.
천하에....
* 죽기직전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존이라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죽는데
그 참회의 눈물을 흘리도록 설득한 장본인이 고 최태영 박사이다.
신문기사 캡쳐까지 있고 요약이 잘되어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