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한평생을 졸렬하게 살아온 종자의 유언장이오. 주변 사람들이 말하더이다. 나는 ‘영웅’이라고,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오. 폐에서 시작 된 암 덩어리가 온몸으로 퍼진 지금에서야 나는 고백하오. 나는 ‘영웅’이 아니오.
때는 1980년 내가 서른한 살이 되던 해였소. 박대통령이 서거하고 끝날 것이라고 생각된 군부정치는 다시금 시퍼런 이빨을 드러냈고, 그에 맞서 ‘계엄령 철폐’를 외치며 거리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날이었소. 그날의 나는 친구들과 달빛을 안주삼아 막걸리에 취해있었소.
창문 밖으로 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교복을 입은 소년과 소녀들이 길을 가득 메우자, 나는 무언가 내 몸에서 들끓는 것이 느껴졌소. 학생들은 저마다 두건을 두르고 ‘계엄철폐’, ‘독재타도’와 같은 종이 뭉치들을 뿌려 되었다오.
나는 들끓는 피를 참지 못해 방문을 열어젖히고, 그 대열을 따라 달렸소. 그때의 나는 ‘대의’나 ‘숭고한 희생정신’이 아닌 그저 젊은 ‘혈기’로 제지하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영웅들의 대열에 합류했었소. 그날의 나는 몰랐다오. 그저 혈기로 감당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백 명이 모여 한목소리로 길거리를 메웠을 때, 저 멀리 경찰과 군인들이 보였다오. ‘설마’,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라는 생각도 잠시 몇 번의 사이렌 소리가 울린 뒤 총탄소리와 매캐한 연기가 거리를 메웠다오.
매캐한 연기가 눈깔을 파먹자 죽기 살기로 달렸소. 내 앞을 달리던 단발머리 소녀가 넘어지자 나는 그 소녀를 밟고 도망갔소. 소녀는 ‘억!’과 같은 단말마와 함께 내 뒤로 달리던 사람들에게 연속적으로 밟혔소. 나는 그 소녀를 밟고 도망갈 때의 감촉을 잊지 못했소. 내가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당도한 것은 막다른 골목이었고, 나 말고 눈에 총기가 가득한 소년하나와 ‘전두환은 자진 사퇴하라.’, ‘독재타도’라는 두건을 쓴 소녀 두 명이 쿨럭 거리고 있었소.
나는 순간적으로 무언가 잘 못됨을 느꼈소. 내가 있는 곳은 막다른 골목, 그리고 꽤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소리……. 나는 필사적으로 담을 넘으려고 했지만, 담은 너무나도 높았소.
내가 담을 넘으려고 버둥대는 사이 내 등 뒤로 경찰 한명과 군인 대여섯이 무장을 한 채로 피식- 되며 웃고 있었소. 그들이 우리에게 던진 말은 ‘어이 빨갱이들 동작 그만’, 그 말과 동시에 나는 얼어붙었소. 나이가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형사는 소년의 멱살을 잡았소.
그러곤 ‘이 새끼 결국 일 치는구먼, 너 오늘 잘 걸렸다. 저번에도 너였지?’라며 소년을 구타하기 시작했소. 소년의 뺨이 시뻘게 질 정도로 형사는 따귀를 후려 갈겼소. 골목 안에는 ‘독재타도’가 아닌 날카로운 마찰음이 가득 찼소.
소년의 입에 피가 터지자 양 갈래 머리를 한 소녀 둘이 형사에게 달려가 ‘더러운 군부의 개!’라며 형사를 밀치고 따귀를 날렸다오. 하지만, 두 명의 소녀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소. 군인들은 달려드는 소녀에게 조소를 날리고 군화로 얼굴을 밟았소. 순식간에 학생 셋의 얼굴이 개떡이 되었다오.
그리고 군인 셋이 내 쪽으로 걸어오자 나는 무릎을 꿇고 빌었소. ‘저는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냥 시민입니다 경감님!’ 무릎을 꿇고 개처럼 기어 형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빌었소.
내 등에 날카로운 군화가 꽂히자, 필사적으로 소리쳤소. ‘저는 정말 관계없습니다! 정말입니다! 두건도 쓰지 않았잖습니까!! 지금 이 상황은 오해입니다! 저는 그냥 친구 술심부름 가는 중이였다고요! 나는 저들과 관계없습니다!’라고 말했소. 그러자 경감은 내 얼굴을 보더니 군인들을 제지했소.
나이 지긋한 형사는 어쩐지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소. 그러곤 소년에게 묻더이다. ‘이 사람 정말 관계없어?’, 소년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소이다. 그러곤 ‘모르는 사람이오.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냥 시민이니, 나만 벌 하시오.’라고 말했소.
나는 뼛속까지 졸렬한 종자였기에 그 말에 미안함, 부끄러움이 먼저 느껴진 것이 아닌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소. 하지만, 군부의 개들은 나를 놔주지 않았소. 그들이 내게 한 말은 ‘그냥 보내 줄 수 없다. 빨갱이가 아닌 것을 증명해라.’였다오.
나는 살고 싶었소. 눈앞의 개들은 시퍼런 이빨을 드러낸 채 번뜩이는 총구를 우리에게 들이밀고 있었소. 살고 싶었기에 나는 옷을 벗었소. ‘저는 무고합니다.’, ‘증명하겠습니다. 나리들!’, ‘이것 보세요. 저는 무기도 없습니다.’ 찝찝한 공기 속에서 나는 팬티 한 장만 남을 때까지 주둥아리를 나불대며 그들 앞에서 스트립쇼를 했소.
피식- 거리며 웃는 그들 앞에서 ‘조금만 더하면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소. 구타당한 소년과 소녀들은 나를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소. 금방 전까지 ‘계엄철폐’를 함께 외쳤건만……. 나는 그들을 무시 한 채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소.
그리고 ‘살고 싶어서’ 소년에게 달려가 싸대기를 날리며, ‘망할 빨갱이 새끼!’, ‘너 같은 새끼 때문에 국가가 발전이 없는 거야!’, ‘국가의 암 덩어리!’라며 양 뺨을 후려 갈겼소. 그랬더니 형사가 웃더이다. 대가리 속에 ‘희망’이 차오르자, 나는 군화에 짓밟혀 부들거리는 소녀 두 명을 맨발로 밟으며 ‘걸레 년’, ‘창년! 너희 둘은 살아 있어 봤자 빨갱이들 좆집 밖에 안 된다!’라며 배를 걷어찼소.
‘전두환 만세! 박정희 만세!’, ‘대한민국 만세!’, ‘전두환은 대한민국의 빛이요!’ 라며 나는 영웅들을 구타했소. 스물도 안 되는 꽃들에게 나는 폭력을 행사하고 냄새나는 개들에게 무릎을 꿇고 꼬리를 흔들었소.
‘이것 보십시오. 군인 나리, 경감 나리’ 나는 거짓 미소를 얼굴에 가득 메꾼 채 그들의 시선을 끌고, 주변의 짱돌로 내 약지를 내려찍었소. ‘저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약속을 뜻하는 네 번째 손가락을 국가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내 네 번째 손가락이 박살났다오.
경감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소.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이다. ‘한 시간 정도 대기’라며 길가에 주저앉았소. 군인 둘은 소녀를 발로 툭툭 걷어찼소. 경감은 그들을 흘깃 한번 보더니 ‘이 뒤에 공터 있다. 거기서 얌전히 먹어.’라고 했소. 그러자, 소년은 ‘그만해, 당신은 양심도 없어?’라며 소리쳤고, 심기가 거슬린 경감은 소년의 배때기에 총을 발포했다오.
‘빨갱이 주제에 입만 살아가지고.’, 소년은 그 앞에서 끅-끅- 거리며 시뻘건 피를 바닥에 뿌렸소. 소녀들은 다 터진 채로 입으로 중얼거리며 울었소. 하지만, 군인 셋은 싸대기를 몇 대 더 후려갈긴 뒤 공터로 데려갔다오. 몇 분 지나지 않아…….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와 울음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뒤섞긴 역겨운 음악이 시작되었다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소.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경감은 내 앞에 앉아 내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소. ‘앞으로 한번만 더 빨갱이 짓 하다 걸리면, 손가락 하나로 안 봐줄 주 알아.’, 그 말에 나는 ‘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소.
‘팬티도 벗지? 날도 찝찝하고, 심심한데 팬티 벗고 섹시댄스나 춰봐.’라는 요구에 팬티까지 벗고 나는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오. 그리고 간간히 ‘전두환 대통령 만세!’, ‘위대한 대한민국 만세!’, 라고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오. 그렇소. 나는 뼛속까지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 이였다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너머로 버스 몇 대가 섰고, 채 자라지 않은 가슴이 다 노출 된 채로 소녀는 그 버스에 끌려갔고, 또 한명의 소녀는 알몸으로 군인에게 팔다리를 잡힌 채, 복날 개 마냥 끌려갔소. 피를 흘리던 소년은 검은색 승용차 트렁크에 실렸다오. 그렇게 나는 혼자 살아남았소. 혼자 남았을 때, 이미 막걸리 기운은 온데간데없었고, 팬티를 부여잡은 채 나체로 끅-극거리며 한참을 울었다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이름 모를 영웅의 핏자국과 그들이 남겨둔 두건이었소. 한참을 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어째서인지 ‘영웅’이 되었소. 내가 손가락이 엉망이 된 채로 돌아오자 친구들은 나를 더러운 군부에 맞선 영웅이라고 치켜세웠고, 나는 그들에게 그날의 ‘사실’을 말할 수 없었소. - 내가 영웅을 버리고, 군부의 개들에게 아양을 떨었다는 역겨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어린 영웅들의 피가 한바탕 길거리를 메운 뒤, 거리가 다시금 상쾌한 공기를 머금었을 때, 거짓 영웅이 되었소이다.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며 무용담을 원하는 그들에게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침묵했고, 내 침묵은 그들에게 겸손으로 비추어졌소.
나의 졸렬함과 죄책감을 씻기 위해 기부했던 돈들은 나를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었소. 내 거짓과 죄를 씻기 위해 한 행동들은 나를 더욱더 괴롭게 했다오. 하지만, 나는 뼛속까지 졸렬한 종자라 나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날의 진실을 말 할 용기가 없었다오. 비겁한 나는 죽음을 앞둔 이제야 말을 하오.
‘나는 영웅을 보았소. 하지만 그 영웅들은 영광의 자리가 아닌 이름 석 자 남기지 못한 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피를 흘리며 죽었다오. 이것이 진실이오.’
미안하오. 그렇게 두고 가서 미안하오. 내 장례식은 아주 간소하게 해주오. 내 뼈는 조각조각 내어 바다에 뿌려주오. 나는 따듯한 흙에 누워 잘 수 있는 작자가 못되오. 그리고 돌아오는 내 기일에는 모이지 말아주오. 대신, 내가 영웅을 보았던 자리에 매년 찾아가 그들을 닮은 새하얀 수선화 세 송이를 놓아주오. 이것이 내 마지막 속죄요.
- 우리는 세월호를 잊지않았습니다.
- 우리는 소녀상을 지킬 것입니다.
- 꿈과 희망이 넘치는 공포게시판으로 오세요.
PS. 민주화 운동 당시 피를 흘린 모든 분께 존경과 조의를 표하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