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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풍경
대웅전 뒷마당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에게
거미가 고운 수의를 한 벌 해 입혔다
허공에 새로 생긴 봉분 앞을 지날 때마다
바람이 경을 읽는다
권대웅, 분꽃
꽃 속에 방(房)을 들이고
살았으면
지붕이랑 창문에는 꽃등을 걸어놓고
멀리서도 환했으면
꽃이 피면
스무 살 적 엄마랑 아버지랑 사는
저 환한 달 속을 다 보았으면
그 속에서 놀았으면
밤새 놀다가
그만 깜박 졸다 깨어나면
그렇게 까만 눈동자
아기 하나 생겼으면
김경성, 이끼
그만큼의 거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디여도 몸 내려놓을 자리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가장 가벼운 몸으로 골짜기 그 너머까지
썩은 나무의 등걸을 지나 동굴 속까지
너른 바위 안쪽까지
철퍽철퍽 미끄러지는 물 잔등이어도
마른 입술 툭툭 터지도록 긴 가뭄이어도
후드득 지나가는 빗방울 몇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대 곁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
아주 짧은
단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도 너른 바위를 덮고
계곡을 덮고
고인돌까지 덮을만큼
지독하게 간절한
무엇이 있어
임동윤, 찰옥수수가 익는 저녁
감자꽃이 시들면서
정수리마다 자글자글 땡볕이 쏟아졌다
장독대가 봉숭아꽃으로 알록달록 손톱물이 들고
마른 꼬투리가 제 몸을 열어
탁 타닥 뒷마당을 흔들 때, 옥수수는
길게 늘어뜨린 턱수염을 하얗게 말리면서
잠자리들은 여름의 끝에서 목말을 탔다
싸리나무 울타리가 조금씩 여위면서
해바라기들이 서쪽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철 이른 고구마가 그늘 쪽으로 키를 늘이면서
작고 여린 몸도 하루가 다르게 튼실해졌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옥수수 줄기처럼 빠르게 말라가던 어머니는
밤마다 옥수수 키만큼의 높이에
가장 외로운 별들을 하나씩 매달기 시작했다
그런 날 나는 하모니카가 불고 싶어졌다
문득, 아버지가 켜든 불빛이 그리워졌다
그 여름이 저물도록 어머니는
가마솥 가득 모락모락 쪄내고 있었다
단맛의, 차진 알갱이들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박기동, 강
기다리지 말아요
그대
기다리지 않아도
나는
그대에게로 가요
저절로
저절로
그대에게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