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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퀴벌레 보아라. 원글에 댓글로 달아 놓은 내용이지만
게시물ID : history_85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iD
추천 : 0
조회수 : 3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4/28 01:00:47

니가 아랫글은 못 볼까봐 새롭게 남겨 놓는다.

 

상식적인 역사 선에서 카퀴벌레의 주장을 반박해 보겠음. 이에 앞서 SowHat 님의 설명 감사드립니다. 님의 글을 카퀴버레가 이해했으면 좋겠네요. 그럼 내 글은 필요도 없을텐데....

일단
1. 재반박
카퀴벌레 :  1. 그래 실제적으로 돈이 그렇게 적자나면서까지 청과 조공무역을 했던게 선진문물을 수용하기 위해서였다면 왜 그러한 적극적인 노력은 바로 안이루어지고 18세기 들어서 일어났을까. 청의 문물을 선진문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커지는건 18세기다.
<== 자 여기서 네가 간과하고 있는게 있다. 17세기의 중국 내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는거...
17세기 중국은 명청교체기임. 수십년간 전란이 있었고, 상식적으로 볼 때 전후복구가 이루어지고 예전과 같은 문화 발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1세기는 필요하다. 따라서 17세기에는 전쟁중이었던 중국에는 문물을 주고받고 할만한 여지가 없었고, 게다가 청 역시 중국의 문물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만한 시간이 없었다. 청에 의해 중국이 통일되고 중국이 아정되고 나서야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고 새로운 학문이 발달하게 되었다.
너는 자꾸 북학 얘기만 하는데 실용적인 학문인 북학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유학 영역인 고증학도 수입됐어.
고증학에 대한 위키 링크를 걸어줄게 . http://ko.wikipedia.org/wiki/%EA%B3%A0%EC%A6%9D%ED%95%99
성리학 국가인 조선은 명에 대한 의리 등으로 인해 반청 감정이 있던 건 사실이야. 북벌론에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이 진정한 중국의 주인으로 자리잡고 청의 문화를 발달시키기되는 18세기에 이르면 조선의 반청감정이 약해진다. 주류 사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2~3세대가 지나야 한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이지.
이러한 내외적인 상황들로 인해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게 18세기부터가 되는 거지, 단순히 17세기까지는 단순히 반청감정 때문에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건 맞지 않는ㄴ 논리야.  받을게 없는 상황인데 뭘 받아들여...ㅡㅡ
니가 얘기하는 청과의 실질적인 상하관계는 17세기까지 일 뿐. 명의 멸망 이후부터는 실질적인 상하관계라고 보기 힘들지. 단순히 형석직인 관계로 바뀔 수 밖게 없어. 청이 조선과 실질적 상하관계를 유지한건(강압적인 외교관계를 가진건) 명의 존재 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왜냐면 청나라 역시 전통적인 동아시아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지.

그리고 니가 죠낸 잘못 이해하고 있는게 있는데, 니가 퍼온 백과사전의 '전통적 종속관계'가 바로 동아시아적 세계관에 입각한 형식적 상하관계를 말하는 거야. 왜냐면 동아시아적 세계관에 입각한 종속관계는 형식적 상하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거든. 조공관계도 형식적이었고(실질적으론 무역과 타 국가 및 세력에 대한 세 과시) 책봉 역시 강압적이고 직접적인 간섭이 없는한 형식적인 것 뿐이거든.

2. 나선정벌은 청의 강제성이 없다고?
<== 내가 그래서 직장상사 예를 들어줬잖아!! 너는 윗사람이 부탁하는데 니가 싫다고 무조건 안들어주냐? "형식적 상하관계"지만 그게 형식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선 서로에게 뭔가 보여줄게 있어야지. 나선정벌이 내정간섭이라는 너에게 이것도 이해하기 힘들 것 같긴 한데... 내가 제시한 직장상사의 예를 잘 이해해봐 좀..ㅡㅡ;;

3. 연호사용 문제
너는 연호를 누가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냐? 당연히 "황제"밖에 없잖아? 형식적 상하관계라도 그게 유지되려면 형식적인 뭔가를 보여줘야 할거 아냐? 그 중 대표적인게 책봉과 연호사용인데 그게 실질적 상하관계의 예로 드는 건 너의 자승자박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중국 연호를 우리가 사용해서 실질적으로 달라지는게 뭔데? 에효.... 일본하고 비교하지마라. 일본은 스스로 천황이라고 높였기 때문에, 그리고 중국의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독자연호의 사용이 가능했건 것 뿐야. 한마디로 일본은 동아시아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던 나라라고. 일본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왜 미개하다는 조롱을 당해왔는지 알면 일본하고 비교할 수 없는거야.

4번은 1번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니까 1번하고 같이 묶어서 생각해라.

 

한가지 첨언하자면
니가 조일관계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의 시각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역사관에 꽤 물들어 있는 모양인데,
일본이 19세기에 '탈아입구'를 주장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동아시아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데 대한 열등감도 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서양식 관점에서 보게 된거지. 나는 니가 그런 배경이 있는 일본의 역사관에 상당히 동화되었기 때문에
조선:청의 관계가 실질적 상하관계라고 주장하는 거라고 생각해.
물론 네 스스로는 중립적인 견지에서 보고자 노력하겠지. 하지만, 지역적 특수성을 무시한 서양중심의 논리에 빠져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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