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인라인 스케이트 열풍이 분 건 내가 중학생일 때였다. 나 또한 유행에 뒤쳐질 수 없어서 하루에 한두 시간씩 인라인을 탔다. 학교 뒷길에서 모임을 갖는 인라인 동호회 형들과 친해진 후로 나는 그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중에는 작곡가도 있었고 제약회사 영업사원, 비데와 정수기 영업사원도 있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형이 처음부터 제약회사에 다녔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작곡가 형과 같은 아파트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였다. 법학과를 졸업하고 아직 취업 준비생이던 그는 취직이 안 되는 통에 집에 눈치가 보여 거의 매일 작곡가 형이 사는 아래층으로 피신을 오는 처지였다. 그는 작곡가 형의 집에서 카트라이더를 하면서 꾸준히 이력서를 썼고 마침내 제약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형은 모닝을 하나 구입해서 타고 다니며 서울 지리를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그날도 작곡가 형의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책을 읽던 내게 제약회사 신입사원 형이 밤늦게 찾아왔다. 회사에 출근한 뒤로 작곡가 형네 집으로 출석하는 시간이 약간 늦어졌을 뿐이지 여전히 그는 작곡가 형네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형은 그날도 파김치가 될 정도로 신나는 하루를 마치고 작곡가 형네 집 문을 열었다. 마침 거실에 배를 깔고 누워서 책을 읽는 내 모습이 눈에 띄었던 형이 내게 넌지시 물었다.
“본부야. 너 곧 방학이지?”
“네.”
“혹시 방학에도 지금처럼 책 많이 읽을 거니?”
“저 책 많이 안 읽는데요.”
“형이 밥 사줄까?”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 조건은 이랬다. 형은 모닝을 끌고 서울 시내를 돌며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영업을 했는데 문제는 주차였다. 차 댈 곳이 애매해서 몇 번 대충 세우고 갔다 왔더니 딱지가 붙어 있었고 반대로 성실하게 주차공간을 찾다보면 시간에 쫓기다가 스케줄이 밀려 하루가 엉망이 된다는 거였다.
형은 내게 어차피 책을 읽을 거라면 집에서 읽지 말고 자기 차 조수석에 타서 읽다가 주차요원이 다가오면 “금방 올 거예요” 한 마디만 해달라고 했다. 집까지 데리러오고 데려다주면서 점심 제공에 늦어지면 저녁까지 제공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형 입장에선 그래봐야 딱지 한 번 떼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데다가 속 편하게 일할 수 있고 오며가며 나랑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도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였던 것 같다.
나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일이라 오케이를 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등교할 때처럼 일찍 일어나서 형의 차를 타고 형이 담당한 지역을 뺑뺑이 돌았다. 일과는 형 말대로 진행됐다. 이동할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형이 병원으로 들어갈 때면 나는 주차된 차 안에서 책을 읽었다. 어김없이 주차 단속 요원들이 다가왔지만 “금방 올 거예요”라는 말 한마디면 그들은 대부분 돌아갔다. 한 번 두 번 마주치다 내 얼굴을 익히게 된 주차요원은 뭔가 수상하다는 듯이 운전자는 어디에 갔느냐고 추궁하기도 했지만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금방 올 거예요” 이 한 마디면 주차요원들은 끝내 되돌아갔다. 조수석에 얌전히 앉아 책을 읽는 중학생한테 딱지를 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나를 데리고 다니는 덕에 제약회사 영업사원 형이 일을 편하게 한다는 소식은 비데와 정수기 영업을 하는 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비데 형은 나를 찾아 작곡가 형네 집으로 와서는 똑같이 물었다.
“형이 밥 사줄까?”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어떤 날은 비데 영업 현장에, 어떤 날은 제약회사 영업 현장의 최전선에 투입되어 그들의 주차공간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열심히 조수석에서 책을 읽었다. 비데 형이 담당한 구역은 대치동 부근이었다. 형은 그 근처 오피스텔에는 혼자 사는 아가씨들이 많다면서 차에서 내릴 때 괜히 백미러로 옷매무새를 점검한 다음 휘파람을 불며 내리곤 했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주차 요원들이 다가왔지만 “금방 올 거예요” 한 마디면 무슨 마법 주문처럼 모든 게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나는 형들의 제안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이 있으니 형들을 기다리는 일쯤은 얼마든지 가름할 수 있을 것이고 결코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처음 몇 차례는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나는 그들을 기다리는 일이 책을 읽는 행위에 따르는 부수적인 일이라고 여겼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들을 떠나보낸 이상 나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형들이 평소보다 한참이나 늦게 차로 돌아올 때면 형들의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단지 몇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오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기다림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생기는 여백은 어떤 근사하고 재미있는 것으로도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기다린다. 시간에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제 때 약속했던 사람과 만날 수 있기를. 과거의 내가 정해놓은 목표에 마침내 미래의 내가 다다를 수 있기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전에 없었던 관계의 싹을 틔우기를 말이다.
기다림은 지루하다. 오랜 관찰 끝에 이걸 잘 견디는 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조금도 슬프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끝에서 더욱 활짝 웃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나는 알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