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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 운영하고 있는 작은 주유소.
휴가철에는 제법 손님이 많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추운때에는 며칠동안 사람 구경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마냥 놀리기에도 뭐해서 겨울이면 가끔씩 내려와 혼자 가게를 봐 주곤 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TV를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던 중 주유소로 차한대가 들어왔다.
주유기 쪽이 아닌 멀찍한 곳에 차를 세우는 것을 보니 기름을 넣으려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무슨일 일까 생각하던 그때 긴 코트를 입은 여자가 홀로 차에서 내렸다.
나를 본 그녀는 내게 다가오더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저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예쁘장한 여자가 부탁하니 도와주고 싶은 의욕이 치솟았다.
“예. 무슨 일이시죠?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차를 돌아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제가 혼자 친척집에 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빙빙 돌다가 여기까지 와버렸어요.
네비게이션도 없는데다 휴대폰도 안 터지네요.
어디로 나가야 할지 알고 싶어서요.”
이 아가씨는 길을 잃고 여기까지 흘러온 모양이다.
“네 도와드릴게요. 저도 여기 길은 자세히 모르지만 안에 지도책이 있어요.
밖이 추운데 안에 잠깐 들어와 계세요. 따뜻한 거라도 한잔 드릴게요.”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를 따라 들어오며 대답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커피를 내어 주고는 곧바로 지도책을 꺼내어 그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색한 듯 TV만 보고 있는 그녀는 내가 옆에 앉자 약간 놀란 듯 보였다.
막상 이곳에 둘만 있다고 생각하니 떨리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살짝 웃은 나는 지도를 펼쳐 친절히 길을 설명 해주었다.
내 말을 이해했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직 내가 타준 커피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커피는 다 드시고 가세요. 운전하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내 말에 그녀는 약간 당황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지금 많이 급해서요.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내가 뭐라고 더 말할 틈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그녀의 모습만 바라보았다.
저렇게 급하게 나간 이유가 뭘까?
의아해 하던 차에 그녀가 보고 있던 뉴스에 눈이 갔다.
뉴스에서는 긴급 속보라며 살인자의 몽탄주가 나오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얇은 입술.
그녀가 급하게 떠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쓴웃음이 나왔다.
이대로 그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밖으로 나오니 그녀는 급히 차 쪽으로 가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저기요 혹시 뭐 못 볼거라도 본거에요? 왜 그렇게 급하게 나가세요?”
내 기대대로 차에 타려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오지마세요. 가까이 오지 마요!”
그녀의 격한 반응을 보고 난 내 예감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뉴스를 보신 모양이네요. 제 말 맞죠?”
그녀는 급하게 차에 타느라 나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녀가 이대로 그냥 가버린다면 정말 일이 커질 수가 있다.
아쉽지만 장난은 이 정도에서 끝내야 할 것 같다.
빠르게 달려서 그녀의 차 앞을 막아섰다.
“저기 잠시만요. 아무래도 오해를 하신 것 같네요.
뉴스 보고 그러시는 거죠? 제가 살인범인줄 아신거잖아요.”
내가 차 앞을 막아서며 말하자 그녀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손까지 휘저으며 해명하기 시작했다.
“오해하신 거라구요. 얼핏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자세히 한번 보세요.”
내 필사적인 해명에도 그녀는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차를 출발시킬 기세였다.
내 장난이 좀 심했나 보다.
난감해 하던 그때,
내가 서있는 그녀 차 앞쪽에 얼룩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대충 닦아낸 듯 한 어지러운 얼룩. 핏자국이 분명했다.
핏자국을 중심으로 차가 살짝 찌그러진 것을 보니 살아있는 무언가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
게다가 그리 오래전에 일어난 일도 아닌 것 같다.
운전석에 앉은 그녀는 핏자국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보더니 눈을 꼭 감고 그대로 엑셀을 밟았다.
난 피하지도 못하고 차바퀴에 깔려 버리고 말았다.
끔찍한 고통에 난 바닥에 널부러져 꿈틀 대고만 있었다.
오해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살인을 들키고 싶지 않았었던 것뿐이었다.
또한 목격자를 살려둘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내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빠르게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by. neptunuse
출처 | 적월 - 공포 카페 http://cafe.naver.com/moonof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