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령의 우화화>5
물에 관한 기억
나룻배가 호수 가운데에 이르기까지 둘은 노를 젓기만 했다. 하늘도 호수도 숲도 구분 없이 암흑이었다. 물살을 가르는 노의 소리만이 호수의 맥박처럼 둘 사이를 채웠다.
표로롱. 숲 쪽에서 새소리가 날아왔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는 손을 호숫물에 집어넣었다. 물은 맑은 수프처럼 따듯했다. 여자가 말했다.
연못에 빠져 죽은 여자가 있었어. 형무소 옆 연못이었는데 아버지는 거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구경 가자고 했지. 여자의 머리카락과 발은 가마니에 덮이지 않아서 볼 수 있을 거라고. 물론 가지 않았어. 그래도 본 것처럼 생생해. 여기 오니 그 기억이 나는군. 6살 때였지.
남자가 말했다.
밤에 물에 빠지면 암담할 거야. 하늘을 볼 수 없잖아. 나는 하늘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개울 웅덩이였지. 어린 애들한테는 깊은 거였어. 몸부림을 치다 의식을 잃을 때쯤 생각했어. 아, 나도 내일 아침이면 뉴스에 나오겠구나. 날마다 웅덩이에 빠져 죽은 애들이 뉴스에 나올 때였거든. 물속에서 보던 하늘빛이 아직도 생생해. 6살 때였지.
어느덧 배는 호수의 가장자리에 이르렀고 둘은 노를 놓았다. 나룻배가 덜컹,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끝없이 낙하했다. 둘은 심연 속으로 활강하려고 일어나 팔을 벌렸다.
낙하의 공포는 없었다. 열풍이 불어와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이들은 빛의 속도로 호수의 출구를 벗어났다.
호수에서 쓴 수기는 기억되지 않는다. 이들은 호수로 가기 위해 애써 꿈을 꾼다. 자신이 쓴 수기의 한 문장이라도 기억해 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