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게시물ID : lovestory_856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07 17:01:1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new
BGM 출처 : https://youtu.be/pvZSiQXHL_E




1.jpg

이병률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2.jpg

진은영그 머나먼

 

 

 

홍대 앞보다 마레 지구가 좋았다

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

철수보다 폴이 좋았다

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

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

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김 뿌린 센베이 과자보다 노란 마카롱이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가족에게서어린 날 저녁 매질에서

 

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연필보다 망치가 좋다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

성경보다 불경이 좋다

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침묵에서노래에게서

 

혁명이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깃털 구름에게서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







3.jpg

박복조부부 일식

 

 

 

멀리서도 해가슴을 베어먹은 달이

스며들어 해 한쪽이 사라졌다

저 모두어 안으려는

패여진 상처를 봐라

제 몸을 베어주고 그만큼 넓어진 남은 한쪽

 

작아져서 더욱 힘차게 껴안은

순한 그림이다

온전히 밝음을 내어준 흔적

달아난 빛만큼 넉넉하구나

 

한 두어 평 그늘진

그리움으로 달이 밝다







4.jpg

정복여안절부절꽃

 

 

 

내 방에 동백이 오셨다고 전화를 한다

남쪽엔 벌써 피었다더라

그 옆에 철쭉도 오셨다 전화를 한다

요샌 아무 때나 철쭉은 피는데 뭐

꽃들이 서랍에서 스위치서 리모콘에서

저것 봐달그락 피어나는 싱크대

그랬으면 그랬지라는 말을

시큰둥한 자루에 꽁꽁 묶어넣으며

별일 없지?

세상은 바쁘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백성이 하나뿐인 나라

그가 바로 나인

단 한명의 백성을 위하여 여왕들은 그렇게 왔다 간다

꽃을 접는 잎 속에 다시 일년치의 새 규율이 있다

지켜도 지켜도 아무도 모르는 생일처럼

 

커튼이 베란다문이라도 열어두라 눈 흘긴다

짧은 바람이 여행객처럼 왔다 가지만

배낭이 그 시큰둥한 자루를 닮아 있다







5.jpg

김두안계단 하나

 

 

 

할머니 한 분

육교 계단을 내려온다

한 손에 지팡이

다른 손엔 가방을 움켜쥐고

계단 모서리 밀고 당기며

엉덩이 끌고 내려온다

가을 햇살도

난간 쇠 파이프 그림자도

구불구불 주름 잡힌 계단

할머니 한 분

온몸

접었다 폈다 조용히 내려온다

계단을 내려설 때마다

무릎 꺾고

허리 접어

육교를 간신히 밀어내듯

계단이

계단을 주름잡고 내려온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