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오해, 풀리다
그랬어?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그래서
그토록
그렇게도
그랬었구나
이종암, 봄날, 하동
매화 피고 나니
산수유 피고
또 벚꽃이 피려고
꽃맹아리 저리 빨갛다
화개(花開) 지나는 중
꽃 피고 지는 사이
내 일생의
웃음도 눈물도
행(行)
다 저기에 있다
장석남, 요를 편다
요는 깔고 몸을 뉘는 물건
사랑을 나누는 물건
어느날 죽음을 맞는 물건
도가(道家) 풍으로
요를 타고 하늘을 날고 싶거나
매미 우는 삼복 한여름에도
요를 펴고 누워
하늘을 부른다
몸은 요를 부르는 물건
사랑은 요를 부르는 물건
죽음은 요를 부르는 물건
꽃을 펴듯 요를 편다
이진수, 굵은 뿌리
굵은 뿌리
뿌리 생김새를 짐작하는
버릇이 있다
껍질이 얇고 반질반질하면
잔뿌리가 많은 나무이고
두껍고 꺼칠꺼칠하면
그렇지 못한 나무라고
잔뿌리 별로 없을
저기 말 없는 저 나무
껍질이 엄니 발뒤꿈치 같다
파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일생이
내 안에 그렇게
뿌리를 내린다
이명윤,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내 마음의 강가에 펄펄
쓸쓸한 눈이 내린다는 말이다
유년의 강물냄새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말이다
곱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나 오늘, 원초적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덜너덜 해지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오늘만은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강가에 서고 싶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날아와
귓가를 스치고
내 유년의 처마 끝에 다소곳이 앉는 말
엉겁결에 튀어나온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뇌리 속에 잊혀져가는 어머니의 손맛을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해 낸 말이다
나 오늘, 속살까지 뜨거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은 그냥, 수제비 어때
입맛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 오늘 외롭다는 말이다
진짜 배고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