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에는 승리한 사람들보다는 패배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항상 강제로 듣게 되는 것은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 뿐입니다.
피나는 노력과 감동의 스토리... 아, 네, 네, 근데 이제 좀 지쳤습니다.
남들못지 않게 게으르고, 남들못지 않게 한심하고, 남들못지 않게 속물적인
바로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신춘문예 및 각종문예공모전에서 셀수 없이 낙선하고,
KBS 공채 개그맨시험에 3년내리 탈락한
전 홍대술집사장이자 현 무자격 음악치료사인
제가 직접 요리해드리고 연주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꼭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선택을 한 것이지 패배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노르웨이 속담에 '넘어지지 않고서는 스키를 배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일으켜주지는 못 하더라도 옆에 떨어진 스키 폴대 정도는 주워드리겠습니다.
예약문의는 www.인간실격패.kr
패배자 이벤트 신청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 이미지 참조.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조만간 오픈할 예정인 내 게스트하우스의 모토는 '본격 패자전문 게스트하우스'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덥석 공짜로 재워주는 것은 아니니, 적당한 근거자료(이혼 서류·사직서·사업계획서·자퇴확인서·연인으로부터 받은 이별문자 등)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첨부하여 신청([email protected])하도록 하기를 바란다. <기자의 말>'패자전문'이라니... 냉정하고 철저한 이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다니 의아할 것이다. 보통 매스컴은 승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불우한 처지를 극복하고 정상에 선 사람들, 혹은 대다수가 불가능하리라고 본 분야에서 기적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는 박수를 받는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정작 우리 주변에는 승리한 사람들보다 패배한 사람이 더 많다. 내가 패자전문 공간을 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패배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보통 우리는 이혼, 이별, 자퇴, 퇴사, 포기 등을 실패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말 실패일까? 그 사람들을 패배자로 보아야 할까? 경우에 따라 다양한 판단이 따를 수 있는 사안이다. 정상적이지 못한 경로라고 무조건 그들을 패배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시선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패자전문이라고 이름을 걸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당신은 선택을 했지,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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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드림 사장의 흑역사 사실 나 부터가 이미 패배의 아이콘 이었다. |
ⓒ 강드림 | 관련사진보기 |
내가 직접 일으켜 세워주지는 못하더라도...우리는 왜 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 인색할까?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그 모습을 그다지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한 번 넘어지면 여간해서는 일어나기 힘들만큼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다. 이런 사회는 개인에게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모험을 주저하게 한다.
다수의 구직자들은 대기업 취직이나 공무원이 되는 것을 최고로 꼽는다. 삶의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개인이 꿈을 찾아 도전하는 대신 안정만을 좇는다면, 사회는 경직되고 자연스레 생기를 잃는다.
노르웨이 속담에 '넘어지지 않고서는 스키를 배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직접 일으켜주지는 못 하더라도 옆에 떨어진 스키 폴 정도는 주워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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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패배자들 그들도 그 시절에는 패배자였던 것. |
ⓒ 을유문화사 | 관련사진보기 |
재미있는 패배자의 이야기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질리도록 들어온 터라 재미가 없다. 또 매번 '뻔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에 반해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훨씬 생동감이 있다. 더 재미있고, 교훈적이며, 다양한 변수도 있다. 내 경험상 여행지에서 듣는 낯선 사람들의 실패담은 어지간한 철학서보다 설득력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그 실패담이 의미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들인가? 지갑의 두께만큼이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층도 얇아져 간다. 이 재미없고 차가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은 함께 어루만져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나는 내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패배자들에게 숙박비를 받지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은 국가 차원에서 행해져야 할 일종의 사회적 부조일지 모른다.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온 패바자가 불쌍하다고 연민할 생각은 없다. 무조건적으로 한 편이 되어줄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같이 들어주고 고민해주는 것뿐이다. 그 사람에게 세상에는 아직 당신의 얘기를 듣기 위해 기다리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아직 이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