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례, 낙화유감
꽃이 해마다 제 빛깔로 피는 것은
잊혀지지 않으려는 간절함 때문이다
꽃이 해마다 제 모양으로 피는 것은
스스로 피어 스스로 지는 까닭이다
꽃이 해마다 제 향기로 피는 것은
다시 피어도 마음 바꾸지 않은 까닭이다
시방세계
종잡을 수 없이 피고 지는 사람아
아는가 꽃이 꽃이 되는 힘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손남주, 가로등
외곽에 도열한
전사(戰士)들의 먼 횃불처럼
빛은 늘 외로운 것
골목길 모퉁이거나
오솔길 풀섶에도 기다림으로 서 있다
가끔 어둠이 다가와
빈 가슴 열어보고
저만치 그림자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눈길 희미하게 뒤따라 간다
더러는 마음 켜둔 채 잊고 간
누군가를 향해 진종일
청맹과니로 서있기도 하지만
언제나 뒤켠에서
먼 길이 되고자
오늘도 반짝 밤을 켠다
복효근, 별
저 등 하나 켜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한 생애가
알탕갈탕 눈물겹다
무엇보다, 그리웁고 아름다운 그 무엇보다
사람의 집에 뜨는 그 별이 가장 고와서
어스름 녘 산 아래 돋는 별 보아라
말하자면 하늘의 별은
사람들이 켜 든 지상의 별에 대한
한 응답인 것이다
채명석, 자반고등어
지난 물결 문신처럼 촘촘히 새기고
한 줌의 소금을 가슴에 품고
가시로 수없이 제 몸을 찔렀을
석쇠 위, 너
삶이란
유영하면서도 결코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이미 알았던 것이다
등을 쫙 가르고
배인 짠물을 뱉어내며
석쇠 위, 당당히 불의 강을 건너
제 몸을 잘라
누군가의 허기를 채운 너
밥상 위, 흩어진 가시들
내 삶의 한 구석을 찌른다
김주대, 사랑한 뒤
비 온 뒤의 하늘은
호수처럼 깊다
간밤에 저 호수가
그토록 범람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