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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사람 다봐서 흔한 명량 후기. (스포약간)
게시물ID : movie_310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키모사베
추천 : 4
조회수 : 5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01 20:31:36
방금 보고 왔네요. 
얼마만에 한국영화를 극장가서 봤는지 모르겠네요. 

재밌냐 없냐로 결론만 먼저 내린다면 
'재밌다.' 겠지요. 

네, 재밌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궤멸상태의 조선군이 일전을 앞둔 뒤숭숭한 상황과
이순신 이름에 두려움에 떨지만 앞선 전력으로 승리의 기대감을 품은 왜군의 상황을 고루 보여줍니다. 

최민식표 이순신 연기는 뒤에 김명민이 아른아른 거리진 않았어요. 
그냥 이순신 장군님이 이런 모습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아무래도 드라마를 재밌게 봐서 그런지 이순신 장군님과 부장들 관계들이 좋아서 막 충심으로 똘똘뭉친 
뭐 그런거 상상했는데 영화에선 ㅠ 걍 고독한 영웅 이순신입니다ㅠ

영화서 고작 12척인데 그중에서도 대장선만 고군분투하는데..
실제로도 그랬다는점에 레알..ㄷㄷㄷㄷ
이순신이라 쓰고 군신으로 읽어야함..ㄷ

전투장면도 나쁘지 않았어요,. 
뭐랄까 대포알이 날아다니는 포격전을 상상했는데 처절한 백병전이 더 많긴했지만
그건뭐 그것대로. 


보고나서 뭔가 정보에 갈증을 느껴서 
검색했는데 이순신장군님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님 대대손손이 훌륭하셨네요 ㄷㄷㄷ

--이하 엔하위키 펌중--

이순신의 후손들은 너무 위대한 조상을 둔 죄(?)로 소질 적성 무시한 채 군대로 끌려가야 했다. 덕수 이씨는 이순신 이후 300여년간 조선 최고의 무반 명가로 자리잡았는데 무려 267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한 반면 문과 급제자는 단 1명 배출했다. 당장 이순신의 아들 이면은 정유재란 때 전사했고 서자 이훈과 이신도 각각 이괄의 난, 정묘호란때 전사했다. 조카 이완은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우다 여의치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 그대로 온 집안이 국가유공자인 셈. 이런 모습은 이후로도 계속되어서 이인좌의 난때 이순신의 후손이었던 5대손 충민공 이봉상(전사)은 처조부가 윤휴였던 이인좌가 거듭된 설득에도 이순신의 후손으로서 역적에게 항복할 순 없다며 항거하다 반란군에게 살해되었다. 윤휴가 등장한 이유는, 다름아닌 자기 서형의 반려자가 이순신의 서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9대손 이용희는 병인양요에 참전했다.[31] 또한 그 유명한 삼도수군통제사에도 역대 208명의 통제사 중 13명이 덕수 이씨 충무공파로 이는 전주 이씨, 전의 이씨 다음으로 많다.

후손들도 이런 내력에 대해 부담스러워 했는데, 이와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매천야록에 실려 있다. 1876년 운요호 사건으로 혼란스러워 했던 당시 운현국에 칩거해있던 흥선 대원군에게 이순신의 8대 후손인 이문영이 배알했는데 흥선대원군이 일본을 물리칠 방안을 물어보자 이문영은 거기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자신도 이렇게 못났는데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도 어찌 잘났겠는가 하고 대답했다고. 실제로 운요호 사건을 이끈 구로다 기요타카가 가토 기요마사의 후손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도 이순신의 후손 중 12명이 독립운동을 하였고, 10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고 한다.#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2013년 1월의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민화도 이순신의 후손이다.# 이민화는 김좌진의 부관으로 김좌진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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