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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을 주었다 #5
게시물ID : panic_854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아저씨
추천 : 13
조회수 : 144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1/03 20: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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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들어왔다. 책상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그대로 몸을 젖혔다.

 '아, 하여간...'

 좀 전에 강 사원이 내뱉은 말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강 사원의 말은 너무나 허황된, '알을 깠더니 사람이 나왔더라' 같은 이야기였다.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으로 넘어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저 세상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세상에 새롭게 잉태되었다. 메마른 황야 한 가운데에서든, 가파른 산맥에서든 죽은 사람들은 붉은 빛을 내며 꽃 한송이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새싹으로 자라나더니 이윽고 빨갛게 얼굴을 여밀며 꽃을 피운다. 검붉은 구름과 황갈색의 대지와 대조적인 모습에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자태를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지는 못했다. 이 곳의 뜨거운 공기를 꽃잎 끝부터 차례차례 적시고 나면 금새 시들어버렸다. 본연의 빛을 금새 잃고난 꽃은 땅을 바라보며 고개가 꺾인다. 그리고 점차 부스럭대며 메말라간다. 결국에는 건조한 바람과 함께 흙과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사람이 태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죽었을 당시 모습 그대로 새롭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마치 동화 속 이야기 같았다. 죽기 전 세상에서 상상했던 사후 세계와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죽고나면 어떻게 될 지는 감조차 잡을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는 있지 않은가. 천국과 지옥같은 얘기. 선한 사람은 천국을 가고 악한 사람은 지옥을 가는 권선징악과 종교적 성격의 이야기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뭐 반은 맞는 말이다. 천국은 없지만 이 지옥은 존재했으니까.
 어째서 사후세계가 지옥밖에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죽은 사람들이 모두 이 지옥에서 꽃 한 송이로 태어났다는 역사학자들의 말을 빗대자면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사람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평소처럼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기위해 황야를 거닐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발견했다. 모난 자갈들과 검은 흙더미 속에서 빼꼼히 내민 조그마한 새싹을.
 갓 태어난 아기마냥 푸르게 빛나고 있는 모습에 문득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다가갔다. 새싹은 굉장히 빠른 시간에 서서히 성장해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 한 송이로 피어났다. 그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되서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마치 메마른 이 대지에 숨을 불어 넣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금새 시들어버리고는 바람과 함께 으스러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낯선 사람이 태어났다.






*
 "야 스트레스를 이렇게 풀어야지. 그렇게 밖에 걸어다닌다고 해결이 되냐."

 강 사원이 억지로 나를 이끌고 테이블에 앉혔다. 최근 들어 유난히도 사색에 잠긴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기분전환 해주겠다며 정장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어, 야 그거."

 "아까 결재받으러 갔을 때 슬쩍했지~"

 은색 빛의 손바닥만한 캔. 맥주였다. 

 "야 이거 걸리면 큰일나잖아!"

 "뭐 어때. 그냥 몰래 마시는거지. 안 마실거야? 그럼 나 먼저 마신다?"

 말을 마친 강 사원은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캔을 들었다. 

 "키아~ 그래 이거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지으며 맥주캔을 쥔 강 사원의 모습을 보자니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음주는 금기사항, 더욱이나 이 맥주는 부장님 사무실에 있는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 분명했다. 부장님은 점심식사 후에는 항상 후식으로 맥주를 마시고는 했다.

 "으음..."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강 사원은 몸을 비비꼬며 유혹했다.

 "역시 근무 중에 먹는 맥주가 최고라니까. 입술을 비벼대는 이 거품~ 목구멍을 놀래키는 이 톡 쏘는~ 아아~"

 강 사원이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결국 나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
.
.


 "그러니까 왜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서..."

 "낸들 이렇게 될줄 알았나."

 어느새 맥주 캔을 비우고서 강 사원과 속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다? 난 내가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이 지랄맞은 업무는 대체가 엉망이라니까!"

 "얌마. 그러라고 있는 영업부잖아."

 "영업? 그래 말 잘했다. 이게 영업이야? 죽은 사람 가지고 죽었다 살렸다 장난치는게?"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졌다.

 "구원해준다는 그 간사한 말로 죽이고 살리고 하는게 이 회사 일이야?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라고!
  이전에 주임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1명도 구원해준 사람이 없었어. 이게 말이 돼? 이런 개같은 업무가 세상에 어디있냐고."

 "이거 맥주 좀 먹었다고 벌써 취했네. 조심해. 누가 지나가다 보면 어쩔려고."

 "어쩌긴 뭘 어째. 사무실에 박혀서 사람들 죽어가는거 볼 바에 그냥 회사 다 뒤집어버리고 나가버릴란다."

 격양한 어조로 말을 마친 나는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강 사원도 급히 일어나 내 옆을 부축해주었다.

 "야~ 나 안 취했어. 안 취했다고."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좀 해라. 일단 사무실에 가자. 내가 같이 가줄게."

 "아니 안 취했다니까~"

 강 사원은 내 팔을 잡고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혹여나 누가 이 거지꼴의 나를 볼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내 몸 겨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쌓이고 쌓인 감정이 격하게 터져나와 잠시 몸에 힘을 잃은 것 뿐이었다. 

 
 복도를 지나 사무실로 향하는 길로 몸을 틀다 마주오는 부장님과 부딪혔다.

 "괘,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강 사원은 내 팔을 풀고서 고개를 꾸벅 조아렸다. 나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몸을 숙였다. 부장님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떨어뜨린 서류들을 주었다. 강 사원과 나도 같이 바닥에 널부러진 서류들을 집어들었다.

 "아, 아니 괜찮네. 자네들은 갈 길 가봐."

 부장님이 말을 더듬으며 당황한 말투로 손사래를 쳤다. 강 사원과 나는 서로 마주 보고서는 일단 집어들었던 서류를 부장님에게 건내주었다. 

 '인구현황 보고서?'

 부장님에게 서류를 건내며 무심코 본 제일 윗 장에는 '인구현황 보고서' 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부장님은 서둘러 나와 강 사원에게 서류를 받고서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검은 그림자들. VIP 고객들이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언제봐도 기분 나쁘도록 찝찝한 고객들이었다.

 "야, 부장님 왜 저러신대?"

 "글쎄다. 나도 모르겠는데."

 강 사원은 입맛을 다시고서는 다시 나의 팔을 잡았다.

 "아, 야~ 나 괜찮다니까."

 "안돼. 너는 괜찮아도 내가 안 괜찮아. 너 이런 모습 누가 보면 어쩔려고 그래."

 "아니 그러니까 나 이제 괜찮대도."

 "잔소리말고 니 사무실이나 빨리 가자. 가서 좀 쉬어라."

 한참을 티격태격하고는 결국 포기하고 강 사원의 팔에 내 몸을 맡긴 채 사무실로 들어갔다.






*
 악몽을 꾸었다. 티끌 하나 없이 눈부시게 맑은 하늘을 위에 둔 채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밤새 비가 왔는지 촉촉히 젖은 풀잎들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잔디에 누워 있는 이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상쾌한 공기와 함께 푸근한 땅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마에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편안한 이 순간을 깨우는 불청객에 자그맣게 욕을 내뱉고 팔로 이마를 닦아냈다. 선홍빛의 액체가 팔에 가득히 묻어나왔다.

 '이, 이게 뭐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라도 눌린 것처럼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점차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가파르게 숨을 내쉬고 힘을 주어 고개를 돌렸다. 한 여자가 나처럼 잔디밭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여자가 입고 있던 새하얀 원피스에는 진흙과 풀잎들이 범벅였고 얼굴에는 새빨간 핏물이 또옥 하고 떨어지고 있었다.

 "지, 지은아!!!"

 나는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여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오래된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나는 여자에게 가까이 가기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기껏해야 팔과 고개만 바둥 거릴뿐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안간힘을 쓰면서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지은아!!!"

 내 외침이 들렸는지 여자는 부르르 떨며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입에서 얕은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괘, 괜찮은거야?"

 물어보면서도 자꾸만 눈이 감겨갔다. 얼굴을 찡그려가며 더욱 눈에 힘을 주고 여자에게 같은 물음을 전했지만 어떤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초점 없는 여자의 눈이 계속해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더욱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연신 여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여자를 살려야한다는 정체 모를 소리가 자꾸만 가슴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감과 함께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강박감이 계속해서 나를 덮쳐왔다.

 "제, 제발...! 지은아!!!"

 
 끼익-

 
 머리 너머로 귀를 찢는 듯한 소리를 내며 차가 언덕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 여자도 나도 저 차에 휩쓸려 갈 것만 같았다. 다급해진 마음에 다시 한 번 몸에 힘을 주어 움직이려고 애썼다.

 "제발.. 제발!!!"

 돌이라도 된 듯 내 몸은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어느새 차가 근처까지 다가왔는지 저 괴이한 소리가 귓 속을 가득 메웠다. 한참을 움직이고 더 이상의 발버둥은 의미없음을 깨닫자 헛웃음이 나왔다. 이대로 끝인가 싶었다. 뭘 어떻게 해도 죽음이란 존재가 내 앞에 다가와 손을 잡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 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개를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야 그렇다쳐도 저 여자는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차 바퀴에 튀어오른 진흙들이 성이라도 난 듯 나의 얼굴을 때려댔다. 갈 곳 잃은 풀잎들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갔다. 커져가는 괴음과 함께 누워있던 나의 머리를 급하게 잡아당기는 바퀴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옆에서 조그맣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됐어...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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