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103권,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2월 20일(경자) 1번째기사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임금이 소(疏)를 보고, 만리(萬理) 등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르기를, ‘음(音)을 사용하고 글자를 합한 것이 모두 옛 글에 위반된다.’ 하였는데,
설총(薛聰)의 이두(吏讀)도 역시 음이 다르지 않으냐. 또 이두를 제작한 본뜻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함이 아니하겠느냐. 만일 그것이 백성을 편리하게 한 것이라면 이제의
언문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한 것이다.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君上)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또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또 소(疏)에 이르기를, ‘새롭고 기이한 하나의 기예(技藝)라.’ 하였으니, 내 늘그막에 날[日]을 보내기 어려워서 서적으로 벗을 삼을 뿐인데, 어찌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하여 하는 것이겠느냐. 또는 전렵(田獵)으로 매사냥을 하는 예도 아닌데 너희들의 말은 너무 지나침이 있다. 그리고 내가 나이 늙어서 국가의 서무(庶務)를 세자에게 오로지 맡겼으니, 비록 세미(細微)한 일일지라도 참예하여 결정함이 마땅하거든, 하물며
언문이겠느냐. 만약 세자로 하여금 항상 동궁(東宮)에만 있게 한다면 환관(宦官)에게 일을 맡길 것이냐. 너희들이 시종(侍從)하는 신하로서 내 뜻을 밝게 알면서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 네들이 음운학의 ㅇ 자나 제대로 아냐? 자음 모음 개수도 모르면 아닥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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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 성리학 한다는 선비라는 새퀴가 '백성은 애초에 자질이 글러먹어서 교화가 안 된다'는 헛소리나 지껄여? 이딴 놈이 선비여? ㅅㅂ
확실히 세종대왕은 여러 면에서 학자적 자질이 풍부했지만, 특히 훈민정음 창제 관련 기사에서는 학자로서의 자부심 혹은 자신감이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