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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냥이라는 말
게시물ID : lovestory_85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56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5/11 18:33:2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new

BGM 출처 : https://youtu.be/ILYzZH4oenc





1.jpg

김주대밤바람

 

 

 

어둠 속

그대 왔다 가는 소리

내가 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사는 우리집 대문까지 와서

문고리만 만져보고

돌아서 울며가는 그 소리를

내가 안다

 

날이 새면 가끔

집 앞 전선줄에 걸린 비닐 같은 것으로

그대 다녀간 걸 안다







2.jpg

서화나이테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다

뽀얗게 말라버린 가장자리를 짚으며 내려오는 산그늘

악물었던 이빨을 풀고 처박힌 냉장고를 기웃댄다

일그러진 문짝을 가리겠다고 수초들 힘껏 팔 뻗는데

멀리서 주위를 맴도는 왜가리들

냉동실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살핀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는 듯 부글거리는 흙탕물 속에서

곰삭은 햇살의 토막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저수지 층

낯익은 기록이다

물기 조금씩 빠져나갈 때마다

저수지 속 묵은 기록들이 환하게 드러난다

물도 제 나이를 적어두고 있었다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서 제 살 위에 적어두었다

어쩌면 눈물을 찍어 썼을지도 모른다

빈 냉장고를 끌어안고 있는 건

저도 섬 하나쯤 품고 싶었던 간절함 때문이다







3.jpg

조정권꽃잎

 

 

 

퇴근 무렵

산철쭉꽃가지 한아름 안고

등산복 차림 사내 전철 올라타

내 옆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다

동덕여대 쯤에서 내릴 때까지

나는

꽃을 무릎에 앉힌 두 손만 보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해온 것들은

모두 무거운 것이었구나







4.jpg

이민하거리의 식사

 

 

 

하나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펼 때는 마찬가지

굶은 적 없는 사람도 며칠을 굶은 사람도

먹는 건 마찬가지

 

우리는 하나의 우산을 펴고 거리로 달려간다

메뉴로 꽉 찬 식당에 모여서

이를 악물고 한 끼를 씹는다

 

하나의 혀를 가진 사람도 세 개의 혀를 가진 사람도

식사가 끝나면 그만

그릇이 비면 조용히 입을 닥치고

 

솜털처럼 우는 안개비도 천둥을 토하는 소나기도

쿠키처럼 마르면 한 조각 소문

 

하나의 우산을 접고

한 켤레의 신발을 벗고

 

하나의 방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방을 가진 사람도

잠들 땐 마찬가지

냅킨처럼 놓인 침대 한 장







5.jpg

조동례그냥이라는 말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별 변화 없이 그 모양 그대로라는 뜻

마음만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난처할 때

그냥 했어요라고 하면 다 포함하는 말

사람으로 치면

변명하지 않고 허풍 떨지 않아도

그냥 통하는 사람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자유다 속박이다 경계를 지우는 말

그냥 살아요 그냥 좋아요

산에 그냥 오르듯이

물이 그냥 흐르듯이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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